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517
2015년 11월 14일 토요일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는 인내심 (루카 18, 1-8)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루카 18, 7)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기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도 자기 중심적으로 기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는데도 하느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신다고 응답의 부재에 대해서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한 재판관과 당시에 최고의 약자 중의 한 사람이던 과부사이에 일어난 이야기를 비유로 드시면서 우리에게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함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32장을 보면, 야곱이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야곱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어머니와 공모하여 형의 장자권을 가로챕니다. 이 사실이 형 에사우에게 알려지자 형의 보복이 두려워서 장인 라반의 집으로 피신합니다. 그 이후로 야곱은 자신의 죄에 대한 댓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됩니다.
장인의 집에서 도피생활을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야곱은 형 에사우를 만날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형이 자기를 만나러 오는데 장정 사백명을 데려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자신의 잘못을 잘 아는 야곱은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자신을 구해달라고 하느님께 밤새워 기도합니다. 얼마나 절박하게 기도를 했을까 상상이 됩니다. 나는 이렇게 절박하게 기도를 해 보았던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신문과 티브이를 볼 때마다 수많은 사건 사고를 보도하는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밝은 소식은 참으로 드물고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어두운 뉴스가 대부분임을 깨닫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의 책임은 누구의 탓도 아닌 나의 탓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세상과 친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지금이 얼마나 회개가 필요한지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얼마나 기도가 필요한 지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잊고 살아갑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요한 묵시록 2장5절의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리겠다.”의 말씀처럼 회개의 삶을 실천해야 하는 싯점인 것입니다.
이는 에페소 교회가 처음에 갖고 있었던 첫 사랑을 회복하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처음에 가졌던 열성, 믿음, 하느님에 대한 사람, 형제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못하면 등잔대를 치워버리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교회의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이 말이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우리가 가졌던 첫 사랑을 간직하고 살고 있는지 잘 살펴 보아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다짐했던 당시의 열정과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 혼자 만의 힘으로 하느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압니다. 사탄의 유혹이 너무나 집요하고 지능적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악마의 유혹에서 이기기 위해서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해야 함을 에페소서 6장 14절부터 17에서 말합니다.
먼저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라고 합니다. 복음으로 허리에 띠를 두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의로움’은 우리가 믿음과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 주시는데 바로 그 의로움을 말합니다.
그리고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라고 합니다. 이 말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의 방패’를 잡으라고 말합니다. 이 방패로 악한자가 쏘는 불화살 즉 악마의 유혹을 막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라고 합니다. 테살로니카 전서 5장 8절에 의하면 이 구원의 투구를 ‘구원의 희망’이리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성령의 칼’을 받아 쥐라고 말합니다. 이 성령의 칼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바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과 하느님의 말씀에 힘입어 악의 세력을 이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6가지로 무장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리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나의 탐욕이나 이기적인 것을 청하는 기도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인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바칠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온갖 기도’라고 할 때 이 기도는 항상 기도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간구한다는 것은 바로 긴절하고 절박한 간청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절박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도하라는 의미를 담고있습니다.
그리고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 26, 38에서 예수님께서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3번씩이나 깨어서 기도를 하라고 하시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깨어있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시지만 제자들을 그 절박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로마 13, 11절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이미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이미 되었습니다.” 고 하는 이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경고의 말씀이 나에게 하는 말씀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심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내심이 필요한 것은 기도의 응답의 지연에 대한 인내심입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는데 하물여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습니까(루카 18, 7). 우리가 성령안에서 항상 깨어서 간절하게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확신을 갖고서 지금 바로 기도와 회개의 삶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 하느님의 침묵 역시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임을 깨닫습니다. 이 침묵의 의미를 깨닫는 하루이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