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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02 07:49
   이웃을 살게하는 죽음 (마태 25, 1-12) -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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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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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506

2015년 11월 2일 월요일

이웃을 살게하는 죽음 (마태 25, 1-12)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 13)

오늘은 우리보다 먼저 주님의 품에 안기신 영혼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죽음’은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면서도 가장 잘 잊고 지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보고 듣고 하면서 함께 슬픔을 나누면서도 이 죽음이 나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우쳐 주십니다.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오늘을 얼마나 살고 싶어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깨닫게 합니다. 어제까지 죽어간 영혼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하는 그 시간을 나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고귀한 죽음이 현재 나의 삶을 있게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내가 죽음으로 이웃이 사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바오로 사도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 8) 하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의 죽음이 바로 죄인인 나를 구원했다는 사실이 더욱 깊이 다가오고 이해가 쉽습니다. 

타인의 죽음이 죄 많은 현재의 나를 살게하고 이제 나의 죽음이 나의 이웃을 살게할 것입니다. 살리는 죽음과 죽이는 죽음의 기로에 서서 나는 지금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립니다. 한번도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아침에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심각하게 중병을 앓아 본적도 없습니다. 그만큼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삶의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타인의 단어이지 나의 단어가 아니었기에 어쩌면 살아있는 이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나 봅니다.

오늘 복음은 언제올 지 모르는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들을 통해서 항상 깨어있어야 함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해 줍니다. 이 신랑은 바로 우리에게는 죽음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그 시간을 기다리는 우리는 이미 지나 왔기에 당연히 주어질 것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함을 깨우쳐 줍니다. 

일곱 처녀가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랑을 맞기 위해서 준비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이기에 긴장으로 맞을 수도 나태함으로 맞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신랑이 나에게 어떠한 존재인가가 대단히 중요할 것입니다.  밤잠을 자지 못하고 마음을 설레이며 맞이하는 신랑인지 아니면 오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맞을 신랑인지 기다림의 태도가 말해 줄 것입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은 사랑을 베풀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덜 사랑할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랑을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랑의 깊이도 폭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신랑을 맞이하는 사람은, 오는 신랑을 맞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와 있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이제 신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고 가고 함으로 만남이 이루어지 일방적인 가고, 오는 것은 참 만남을 이루지 못합니다.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답하는 것을 통해서 참 만남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 나보다 먼저 주님의 품에 안긴 영혼들을 생각하면서 살아 있는 이 시간의 의미가 나에게 더욱 무겁게 다가옵니다. 동시에 내가 존재할 수 있도록 자신의 존재를 내어주신 그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죄 많은 인간에게 다시금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이제 나도 나의 이웃을 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의 십자가로 만드는 하루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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