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504
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시대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사랑(루카 14,1-6)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루카 14, 3)
오늘 예수님께서는 저에게 “너는 군중 속에서의 고독을 이겨나갈 수 있겠느냐? “하고 질문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 때문에 추세를 거스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들 그렇게 해’ 하면서 잘못된 길에 동참하도록 초대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에 ‘아니야’ 하고 대답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느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듭니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드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당시의 모든 바리사이들이 다 예수님을 미워하거나 싫어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모두가 예수님을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도 대부분의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니오’ 라고 대답하는 바리사이들이 있었슴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바리사이들 가운데에는 에수님께서 어떠한 행동이나 말씀을 하시는 가에 관심을 두고서 고발할 건수를 찾기 위해서 예수님을 유심히 지켜 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그 자리에 수종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병은 근육에 물이차서 그 물을 빼내야 하는 병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랍비들은 이 벙은 부도덕한 생활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예수님의 앞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우연일 수도 있지만 이 일이 있기 전 후의 사정을 고려해 보면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데려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보실 수 있는 바로 예수님 앞 자리에 그를 자리하게 했을 것입니다.
지금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13장 14절에서처럼 이 안식 일에 병을 고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삼으려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의 속마 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먼저 질문을 하십니다. 6장 9절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하고 물으시는 것과 같이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루카 14, 3) 하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바로 율법 에 맞느냐, 어긋나느냐? 라는 질문과 같은 것입니다.
이들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자코 있습니다. 6장 9절에서의 질문에도 반박하지 못했던 이들이 지금의 질문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들의 침묵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청하지도 않은 이 병자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이렇게 수종 병 환자를 고쳐서 돌려 보내시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대한 당신의 가르침을 명확히 하십니다.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자기의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 내듯이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비록 죽을 병이 아니라 할지라도 병자를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지혜가 생깁니다. 나를 사랑하면 보이는 것도 보지 못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면 보이지 않는 것도 보게 됩니다. 사랑은 마음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닮고자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들 그래’하면서 걸어가는 그 길을 단호하게 ‘아니오’ 하고 답하면서 주님 안에서의 외로움을 선택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