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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27 21:39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얻는 교훈 (루카 6, 12-19) -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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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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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502

2015년 10월 28일 수요일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얻는 교훈 (루카 6, 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루카 6, 12-13)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맹인이었던 바르티메오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애타게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하는 모습이 생각이 났습니다.  시력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 볼 수 없게 되었기에 그의 답답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가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할 때 얼마나 간절함을 갖고 청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이러한 간절함을 갖고서 기도해 본적이 없기에 오늘 저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한 순간의 기도라도 최선을 다하고 간절함을 갖고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밤새워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기도가 필요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기도를 하실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일을 하실 때마다 자신의 뜻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알고자 노력하십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나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찾는 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을 찾으시는 이유는 아버지의 뜻을 찾기에 좋은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즉 아버지의 뜻을 찾기 위한 장소의 조건은 한적하고 고독한 장소이고 당신과 아버지 단 둘이 있기에 방해 받지 않는 장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새워 기도하십니다. 그만큼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아버지의 뜻이 중요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당신께서 아버지의 뜻을 찾은 이유는 바로 열 두 사도를 뽑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합당한 사람을 찾으신 것입니다. 이제 뽑힌 열 두 사도는 자신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난 우리는 바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살피시고 난 뒤에  뽑으신 당신의  열 두 사도들의 면면을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제자들의 선택입니다. 바로 여기에 하느님의 뜻의 신비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사고와 하느님의 생각의 차이가 있슴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나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찾는 것이 기도이고 이 기도는 바로 우리를 순명으로 이끌어 감을 보게 됩니다. 신앙인이란 바로 기도하는 사람이고 순명하는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뽑으신 열 두 사도 가운데 두분 즉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입니다.  이 두분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시몬은 열두 사도 명단에서 '열혈당원'으로 소개됩니다(마태 10,4 ; 마르 3,18 ; 루카 6,15 ; 사도 1,13). 열혈당원은 당시 이스라엘을 식민통치하던 로마제국에 맞서 무력으로 이스라엘의 자주 독립을 꾀하던 이들을 말했습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들이 한결같이 시몬을 열혈당원이라고 소개한 것을 보면 시몬은 예수님께 제자로 부름 받기 전에 이 민족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것 같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 앞에 '열혈당원'이라는 별칭을 붙였을 수도 있습니다만, 별칭을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시몬이 열혈당원으로 활동했음을 확인해주는 표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6세기쯤에 유포된 「시몬과 유다 수난기」 같은 위경에 따르면, 시몬은 소아시아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톱질로 몸이 잘리는 형을 받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래선지 시몬 사도의 상이나 그림은 톱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시몬의 율법에 대한 열정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열혈당원이라는 말 자체에 열정이 담겨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다

유다는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로 나옵니다(루카 6,16 ; 사도 1,13). 반면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에서는 타대오라고 부르지요(마태 10,3 ; 마르 3,18). '다두'라는 세례명은 이 타대오를 한자식으로 표기해서 부른 것입니다.

복음서들에서 이렇게 유다와 타대오로 이름이 달리 표기되어 있는 이유는 ,  어쩌면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의 저자들이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을 혼동하지 않도록 일부러 타대오라고 기록했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다의 그리스식 이름이 타대오라는 설도 있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한 사람이 두 가지 이름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에 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교회 전통은 초기부터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타대오를 같은 인물로 여겨왔습니다. 전승이나 전설에 따르면 유다는 시몬과 함께 열혈당원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또 위경인 「시몬과 유다의 수난기」에서는 유다가 시몬과 함께 소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으며 페르시아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시몬이 톱질로 순교당한 데 비해 유다는 창에 찔려 순교했거나 또는 도끼로 참수형을 당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다 사도는 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평화신문, 제985호 2008년 9월 7일  이창훈 기자  참조)

‘아는 것이 힘’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이 아는 것이 힘이고 출세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러한 사람이 성공을 가져다 준다고 이들을 찾는 것이 바로 현대 사회의 경향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추세가 가져다 주는 심각한 문제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인 사회에서는 인간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 만이 보입니다. 그래서 다시 ‘인간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눈은 ‘아버지의 뜻을 찾는 것’에서 나옵니다. 매사에서 아버지의 뜻을 찾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좀 더 진지하게 주님을 찾는 삶을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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