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 메인홈 로그인 | 메일재인증 | 업데이트 알림 | 회원가입 | 관리자 문의 |  사이트맵 |  84 (회원 0)  
ApacheZone
등록된 배너가 없습니다.
등록된 배너가 없습니다.
Home >  강론및기고 >  매일말씀묵상
 
작성일 : 15-12-30 06:56
   백금율의 삶(요한 1, 1-18) - 556
트랙백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660  
이글을 내twitter로 보냅니다 이글을 facebook으로 보냅니다 이글을 미투데이로 보냅니다 이글을 다음요즘으로 보냅니다  


송년미사 강론 - 556

2015년 12월 31일 목요일

백금율의 삶(요한 1, 1-18)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 14) 

이제 달력의 날도 하루가 남았습니다.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교차점에 서 있습니다.  그냥 지내다 보니 일년이 지났다는 느낌이 옵니다. 세월은 화살과 같이 지나갑니다. 언제나 시간을 쫓아가다 보면 시간의 노예가 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주님 안에서 살아가면 시간의 주인이 됩니다. 주님의 품에 안겨있는 삶은 일분도 천년같고 천년도 일분 같으니까요.

피정을 마치면서 참가자 여러분들께 피정에서 받은 은총을 간직하고 이 은총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은총의 힘은 쓰면 쓸수록 소진 되는 것이 아닌 늘어나는 것입니다. 지침이 없습니다. 하지만 쓰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사용하더라도 나를 위한 사용이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야하기 때문입니다. 

The Platinum Rule이라고 하는 책이있습니다.  Golden Rule이라고 하는 황금율에 대해서는 들어봤는데 Platinum Rule이라고 하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황금율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접을 받고저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것입니다. 그 말에는 모든 사람의 욕구, 기본 욕구는 같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대접 받고저 하는 마음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금율이란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가 원하는 방식대로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요? 기본적으로 사람의 욕구와 성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입맛이 다 다르고 취미가 다 다르기 때문에 가치관도 이상도 다르기 때문에 부득불 우리는 내 생각을 버리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그를 대하라는 것이 백금율입니다. 그렇습니다.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가? 그 수준과 그 입장, 그 욕구를 따라서 그 방법대로 내가 그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백금율입니다. 이 백금율로만 21세기를 살아갈 수 있다는 내용의 책입니다. 

사실 그러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내가 그를 따른다, 하게 될 때에 기준은 어디에 있고 나는 어디에 가는 것입니까? 하느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심과 진리를 이 백금율의 긴장관계를 바로 찾아나가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의 평가 기준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난 일년동안 얼마나 성공을 했습니까? 얼마나 벌었으며, 얼마나 출세했고, 얼마나 배웠고, 얼마나 얻었습니까? 그렇게 볼 것입니까? 이것이 성공이 아닙니다. 성공의 판단 기준은 먼저 목적입니다. 얼마나 목적을 향하여 직선적으로 살았는가? 목적에 합당한 일을 했느냐? 내 생에 궁극적 목적을 지향하고 바로 살았느냐? 

둘째는 얼마나 자유했는냐? 돈을 많이 가졌더라도 그 돈 걱정을 하느라 잠을 못 잔 사람은 절대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출세했다고 해서 불안에 떨면 그 사람은 절대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소유욕이나 욕망이나 시기나 질투나 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평판도 다 털어버리고 내 영혼과 양심이 자유로워야 합니다. 얼마나 자유했습니까? 그것이 바로 성공의 기준입니다. 

또 하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얼마나 기쁨을 얻었습니까? 나로 인해서 내 가정이 얼마나 행복해졌습니까? 나라고 하는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유익한 존재이고 덕을 끼치는 존재로 성숙했느냐, 그것을 물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 요한복음 1장 1-18절은 성탄 대축일 낮 미사에서도 봉독했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요한 복음 3, 16절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는 말씀과 함께 생각을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에 대해서 묵상하게 됩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이 큰 사랑을 머리로가 아닌 마음으로 느껴보고자 합니다.  현재의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하느님의 사랑에 기인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동시에 ‘그분이 우리와 함께 사신다.’는 그 말씀이 다가올 미래의 시간을 두려움이 아닌 희망을 갖고서 살아가게 합니다. 사랑은 함께함을 의미합니다.  이 사랑은 인간의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한계 때문에 인간이 가져야 하는 모든 두려움을 없애 줍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한계적인 존재인 인간이 한계 밖의 존재인 하느님께 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하느님께로 데려가기 위해서 한계 안으로 들어 오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제 이 하느님은 우리를 한계 밖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그 한계 밖이 하늘나라입니다. 이 하늘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진 나라입니다. 

오늘 한 해의 마지막을 지내면서 백금율의 삶을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사랑에 감사로 응답하는 삶을 살고자 다짐합니다. 



이글을 내twitter로 보냅니다 이글을 facebook으로 보냅니다 이글을 미투데이로 보냅니다 이글을 다음요즘으로 보냅니다  

 
   
 

굿뉴스 Diocese of Austin 마리아사랑넷
이용약관 |  개인보호정책 |  광고안내 |  온라인문의 |   로그인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Korean Catholic Church at Austin, Texas | 6523 Emerald Forest Drive, Austin, TX 78745 | Phone:(512) 326-3225
Copyright ⓒ www.kcc-austin.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