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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2-15 09:18
   의심을 하지 않는 삶 (루카 7,18ㄴ-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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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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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544
2015년 12월 16일 수요일
의심을 하지 않는 삶 (루카 7,18ㄴ-23)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23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루카 7, 22-23)
오늘 저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삶’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인간관계 안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과 신뢰’입니다. 눈으로 보고서도 의심하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신앙을 갖고서 살아가면서도 나의 기도가 나의 뜻에 따른 응답이 없으면 하느님을 의심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이 사실은 마태오(4장)과 와 루카 복음(3장)은 동시에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 사해의 동쪽에 있는 마캐루스 요새에 감금되어 있다고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그는 감옥에 갇혀있기는 하였지만 완전히 외부의 세계와 단절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제자들은 쉽게 그를 만날 수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체포된 뒤부터 공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의 활동에 관한 소식을 제자들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당신의 제자들 두 사람을 불러서 “오실 분이 선생님이 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하고 묻게 합니다.  여기서 ‘오신 분’은 메시아를 뜻합니다. 따라서 요한은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신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을 보냅니다. 하필이면 두 사람을 보내는 이유는 바로 법적으로 어떤 사실을 증언할 때 필요한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로 당신의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두 사람씩 짝을 지어서 보내셨슴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네 복음서 모두 다 요한은 처음부터 예수님에 대해 계시를 받았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었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메시아로 소개한 것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것 같은 내용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요한은 왜 새삼스레 제자들을 보내서 이런 질문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의문에 명쾌하게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질문에 학자들의 답변을 아래의 세가지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심판자'로 소개했었습니다(3,17). 그런데 예수님 은 심판보다는 구원과 복음 선포에만 집중하셨습니다.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 하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셨을 뿐, 세상을 심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그 점을 의아하게 여겨서 예수님의 정체에 관해 질문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둘째는,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의심했다는 해 석도 있습니다. 이 해석은 요한이 제자들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서 그들이 예수님의 말 씀을 직접 듣고 예수님의 활동을 직접 보라고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냈다는 해석입니다. 
세째는, 세례자 요한이 자기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을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보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좀 더 빨리 당신이 메시 아이심을 선언하라고 재촉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보낸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이 해석들이 모두 정당한 근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해석이 옳은지 한 가지만을 선택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을 품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서 그런 질문을 한 진짜 의도, 또는 요한의 진짜 생각이 무엇 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자신보다 더 큰 능력을 갖고 계시고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들릴 자겨조차도 없고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으로 전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을 할 때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는 당신께서 말로서 대답하시기 보다는 당신의 행동으로 당신이 누구신지를 보여주고 있슴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이사야서의 예언이 당신을 통해서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 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는 이사야서 에 나오는 구절들을 인용하시면서 당신이 바로 이사야가 예언한 그 메시임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마지막에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들이 행복하다.”(루카 7, 22-23)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예수님의 답답한 심정이 저의 마음에 그대로 전달되어 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예수님께 대한 의심을 버리고 참 행복을 누리며 살고자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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