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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11 01:30
   선긋기를 넘어서는 사랑을 실천하는 삶의 행복(루카 11,27-28) - 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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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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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799

2016년 10월 8일 토요일

선긋기를 넘어서는 사랑을 실천하는 삶의 행복(루카  11,27-28)

 “27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 27-28)

인간은 누구나 선 긋기를 좋아합니다. 혈연, 지연, 학연, 등등으로 선을 긋습니다. 그 경계 안에 들어오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친절하고 관대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계가 너무나 폐쇄적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경계를 부수라고 하십니다. 특히 오늘 예수님께서는 폐쇄적인 가족의 개념에서 벗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순님께서 군중에게 말씀을 하고 계실 때 어던 여자가 예수님을 향해서 소리를 높여서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모태와 젖을 먹인 가슴’은 당시 유대인들이 신체의 일부를 인격을 가르키는 표현법에 비추어서 해석하면,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님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행복하다은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드고 지키는 이들이 더 행복하다.” 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당신의 어머니께서도 행복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특권은 바로 우리가 당신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서 바오로 사도는 갈라티아 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갈라 3,26)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과 불성실한 사람과의 차이는 믿음의 ‘항구함’의 차이일 것입니다. 믿음의 삶이란 삶의 주인이, 목적이 누구인가에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느님이 삶의 목적이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믿음에 기초한 성실한 사람은 주인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삶의 양식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위선자들과  진실한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하느님이 목적인 겉과 속이 같은 사람과 자신이 목적인 겉만 번지르한 사람의 차이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산다는 것’ 이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제 올 지 모르는 주인을 의식하면서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항상 긴징하면서 피우는 게으름입니다. 하지만 성실한 사람의 경우에는 육체적으로 조금은 피곤할 지 모르지만 언제나 마음이 편합니다.  언제나 주인이 올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항상 자신의 일에 성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우리의 삶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살아갑니다. 언제나 깨어있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그분을 반갑게 맞기 위한 기쁜 준비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이 우주만물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리의 책임을 맡은 사람이 주인이 되고자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맡은 그 직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루카복음에서 1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어떤 주인이 집사에게 자신의 재산과 하인들을 잘 관리하라고 명하고 주인이 떠났을 때  성실한 집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책임을 성실하게 잘 실천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유는 이제 주인은 자신의 집사를 더욱 신뢰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맡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참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추구함에 있습니다. 삶의 의미는 바로 나의 삶의 매 순간 순간에  하느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체험은 먼저 내가 실천함에서 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먼저 다가가는 사랑을 실천하며 살다보면  내가 얼마나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살고 있는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행복은 바로 성실함에서 오는 행복을 말합니다.  소유하기 위해서 눈치를 보지 않는 삶, 남에게 보이는 삶을 살기 위해서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참 행복을 주지 못함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오로지 하느님 만이 참 행복의 주인이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육적인 관계 안에서의 행복을 넘어서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누리는 참 행복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하루룰 시작하면서 보편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참 이웃이 되어주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의 얼굴이 바로 나의 얼굴이 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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