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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23 14:53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삶 (루카1,57-66) -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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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2,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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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49

2014년 12월 23일 화요일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삶 (루카1,57-66)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오늘 아침에 나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너는 세상의 관습과 전통이 나의 뜻과 어긋날 때 너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이냐?’ 하고 저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사제인 즈카르야와 그의 아내인 엘리사벳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아이를 더 이상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하느님 앞에서 참으로 흠없이 살았던 사람들이기에 이들이 아이를 갖지 못한 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하느님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들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러한 시각을 갖고서 이들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꼭 그러한 시선을 의식해서 만은 아니라 참으로 아이를 갖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어느날 가브리엘 천사가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간 즈카르야에게 나타나서 그의 아내가 자신들의 청원대로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에 즈카르야는 순간적으로 하느님의 능력을 믿지 못합니다. 하느님 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하느님께 청을 하였지만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것에 의심을 가집니다. 즈카르야는 믿지 않았기에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말을 못하게 됩니다. 우리의 모습입니다. 믿음의 양면성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즈카르야가 말을 못하게 되는 것에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하느님의 더 큰 뜻이 숨겨져 있슴을 알게 됩니다.

그 일이 있은지 10개월이 지나고 아이를 낳고서 이들 뿐만 아니라 이웃과 친척들이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크신 자비에 함께 기뻐하였다고 복음은 전해 줍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크신 자비는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큰 선물인 축복입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응답을 우리는 봉헌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큰 기쁨으로 하느님의 축복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이 기쁨은 감사와 찬미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즈카르야가 말을 못하게 된 것을 우리는 믿지 않은 것에 대한 벌이라고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말을 통해서 단순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즈카르야가 말을 못하는 것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던 하느님이신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하게 되는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 매 순간마다 벌을 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너무나 인간적인 생각일 뿐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이 모두 다 하느님의 벌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느님은 어디에 계실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를 갖기에 불가능한 나이에  아이를 갖게 되고 10달 동안 말을 못하다가 말을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이 하느님의 영광이 세상에 알려짐으로서 하느님께서 참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이 믿게 하려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여드레 째 되는 날에 아이가 할례를 받게 되고 아이에게 이름을 자신들의 관습에 따라서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서 즈카르야라고 부르려고 하자 아이의 어머니가 ‘요한’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엘리사벳이 어떻게 요한 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는 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즈카르야가 자신의 부인 엘리사벳에게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은 못하지만 글로써나 다른 방법을 알려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웃들과 친척들은 자신들의 가문에는 그러한 이름이 없다고 말하면서 즈카르야에게 무슨 이름을 지을 것인지 묻습니다. 즈카르야는 서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씁니다. 바로 그 순간 즈카르야는 혀가 풀려서 말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사람이 받는 축복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간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과 세상적인 삶의 논리와 관습과 배치되는 경우가 생길 때 하느님의 뜻과 계획을 선택하는 어려움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삶을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세상의 논리를 넘어서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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