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43
2014년 12월 16일 화요일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삶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마태 21, 31-32)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결정을 하든 잘못된 판단이나 결정을 하게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면 그 부족함을 인정하고 새롭게 시작하면 됩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만 하면 모든 것이 원만하게 잘 풀릴 수가 있을 터인데 고집을 부려서 일을 흐트려 놓는 사람들을 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창녀들이 비록 처음에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인간형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말로서는 올바른 선택을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지 않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당시의 바리사이들이나 사제들, 율법학자들 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형식적인 삶의 모습에 대해서 엄하게 경고를 하십니다. 마태 7장 21절에서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3장 3절에서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드들을 비판하시면서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처럼 말로서의 신앙생활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리와 창녀와 같은 삶으로서의 신앙생활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교만에 기초한 신앙과 겸손한 신앙생활의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란 바로 삶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옳은 길을 가려하면 많은 유혹이 다가옵니다. 너무나 많은 합당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혹의 바다에서 헤쳐나올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에수님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사랑은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이 겸손은 우리를 유혹의 바다를 헤쳐나오게 합니다.
본당에서 이틀에 걸쳐서 ‘성가의 밤’과 ‘성물 전시회’를 했습니다. 많은 분들의 희생과 노력의 결실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었습니다. 헌신적으로 참여해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어린아이들의 성가와 율동은 참으로 감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참여한 모든 분들이 자신들의 기대이상의 성과를 보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을 실감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한계적인 우리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삶이 중요합니다. 주님 안에서 항구하게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다짐하면서 쓰러지는 저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주님의 품 안에서 사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신약은 마태오로 시작하여 묵시록으로 끝납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서 말하고 초대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사도행전에서 보여주고 있으면 바오로의 사목여정에 대해서 말하고 묵시록으로 끝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님은 메시아다하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으로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신약이 있기에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함을 받습니다. 구약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유다교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중심에 계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예언자라고만 생각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