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40
2014년 12월 12일 금요일
과달루페 성모님 축일에
오늘은 과달루페 성모님의 기념일입니다. 과달루페 성모님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멕시코에서는 오늘을 자신들의 명절 가운데 가장 큰 명절하나로 생각합니다.
오늘 묵상 글은 과달루페 성모님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양 제랄드 신부님께서 2011년 월간 레지오 마리애에 쓰셨던 ‘과달루페 성모님의 발현 의미와 메시지’라는 글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레지오의 영성] 과달루페 성모님의 발현 의미와 메시지
스페인 침략 전과 후 인디오의 세계
1519년에 멕시코를 정복한 코르테스의 군대는 멕시코에 처음 도착한 직후, 이곳에 유럽 문명국가에 비할 수 없는 훌륭한 문화를 가진 민족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신앙은 다신교의 형태를 갖춰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 인디오의 세계관에서는 우주가 완전하고 조화로운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혼돈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들이 필수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인간이 태양에게 필요한 양식인 피를 충분히 바치지 못한다면 인류는 태양과 함께 영원히 죽을 것이라는 그릇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521년 아즈테카 제국의 수도인 테노츠티틑란 시를 정복한 스페인 군인들은 많은 건물들을 파괴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신에게 바치는 제사에서 행해지는 인신공양을 중단시키기 위하여 피라미드와 같은 종교 시설들을 제일 먼저 파괴하여 인디오의 세계는 무너지게 되었다. 사회 조직과 생활 방식 등 모든 분야에서 강제적으로 스페인의 방식을 따라야 했고 재산도 몰수당했다. 그때 스페인 인들은 인디오들의 수도 이름을 멕시코시티로 바꾸어 부르며 스페인식 건물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것은 인디오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러나 인디오들은 스페인 사람 중에도 자신들을 도와주며 군인들의 손에서 구해 주려고 노력하는 착한 선교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디오들은 인간적인 면에서는 선교사들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그들이 권하는 십자가 종교는 두 가지 이유에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나는 종교가 가르치는 바와 너무도 다른 스페인 군인들의 야만적인 행동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십자가 위에서 죽은 신을 믿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 마음을 지닌 인디오들은 조금씩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1527년에 세례를 받은 후안 디에고와 그의 부인 루치아도 그 중 하나였다.
과달루페 성모님의 발현
과달루페 성모님의 발현은 루르드(1858)나 파티마(1917)의 발현보다 수백 년 앞선 1531년에 일어났다. 발현으로 인해 당시 고통 속에 신음하며 정신적으로 갈 곳을 잃은 수많은 인디오들은 물론 수많은 이들이 육체적 정신적 구원을 얻었다. 과달루페 성모님은 생명을 존중하는 어머니적 사랑을 강조하셨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 분을 알게 되면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모친을 통해 우리에게 크신 사랑을 보이신 것이다.
1531년 12월9일, 당시 신영세자였던 후안 디에고는 새벽미사에 참례하고 교리를 배우기 위하여 테페약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아름다운 음악 소리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이끌려 산꼭대기로 올라가 그곳에서 태양같이 찬란한 옷을 입고 무지갯빛을 발하고 계신 성모님을 뵙게 되었다. 성모님께서는 후안 디에고에게 “나는 이곳에 성당을 세우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성당에서 나의 사랑, 나의 자비, 나의 도움과 보호를 모두에게 베풀겠다”고 하시며 이를 주교에게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후안 디에고는 주교인 후안 데 수마라가를 찾아가 성모님의 말씀을 전하였지만 주교는 믿지 않았다. 두 번이나 자기를 찾아온 후안 디에고에게 주교는 그 이야기를 믿기 위해서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성모님의 표징이 필요하다고 하였고, 이를 전해 들으신 성모님께서는 다음날 아침에 표징을 주겠다고 하시며 후안 디에고에게 다음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셨다. 그런데 후안 디에고가 집에 와보니 삼촌인 베르나르디노가 열병에 걸려 위독한 상태였다. 그래서 성모님과 약속한 날인 12월12일 아침에 후안 디에고는 성모님과의 약속을 뒤로 미룬 채, 사경을 헤매는 삼촌에게 고해성사를 받게 해주려고 사제를 부르러 성모님 몰래 다른 길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후안 디에고를 찾아 산 중턱까지 내려오셨다. 그 모습에 놀란 후안 디에고는 성모님께 정중히 용서를 청하며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성모님께서는 이미 삼촌의 병이 완쾌되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표징을 가지고 주교에게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후안 디에고는 성모님께서 주신 장미 꽃송이들을 자신의 옷에 싸서 주교에게 가서는 옷에 담아간 장미꽃들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주교가 갑자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당황한 후안 디에고가 주교의 눈길이 머물러 있는 자신의 옷을 보고는 몹시 놀랐다. 그동안 테페약 언덕에서 만나 뵈었던 성모님의 모습이 그대로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병석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후안 디에고의 삼촌은 찬란한 옷을 입으신 하늘의 여왕님께서 찾아와 병을 깨끗이 치유해 주셔서 회복하였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성화가 성당에 안치되면 그것을 “데 과달루페의 영원하신 동정 마리아”라 부르라고 말씀하셨다. 성모님께서 이렇게 후안 디에고에게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그의 삼촌에게는 이름을 가르쳐 주셨다.
발현 후 변화
많은 인디오들이 과달루페 성모님의 성화를 보며 감탄하는 한편, 후안 디에고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아 새로운 종교에 믿음을 가지고 세례를 청하였다.
발현 후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병자들이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여 건강을 회복했고 위험에 빠진 이들이 성모님의 도움으로 곤경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육체적 치유의 기적보다는 영적 치유의 기적이 더 많이 일어났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성모님께 위로를 받아 삶의 힘을 얻었고, 죄인들이 회개했으며, 냉담자들이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열두 명의 교황은 과달루페 성모 발현과 성화에 대해 사랑과 존경을 표현하며 그에 대한 신심을 승인하였다. 1754년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멕시코의 주보성인으로 승인하고 고유미사와 성무일도를 허락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과달루페 대성전을 네 번 방문하셨다.
과달루페 성모님의 호칭
과달루페 성모님은 여러 호칭으로 부를 수 있다. 그분께서는 발현 당시 단순한 의미가 아닌 여러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그분을 부를 때에는 화해의 모후, 희망의 모후, 위로의 모후, 복음화의 모후, 토착화의 모후, 사랑과 자비의 모후 등으로 부를 수 있다. 과달루페 성모님께서 이러한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셨으니 우리 역시 각 모습의 특징을 바탕으로 여러 방법을 통하여 기도할 수 있다.
모든 이들이 어머니의 뱃속에 생명이 자리 잡은 순간부터 그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도록, 그리고 이미 태어난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 아이들의 피부색, 생김새, 건강에 상관없이 모두 받아들이고 사랑하도록 태아들의 수호자이신 과달루페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는 묵주기도를 바칠 수 있다.
과달루페 성모님께서 그리스도를 태중에 모신 모습으로 발현한 그 당시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낙태를 하고 있었다. 인디오 세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목표 없는 삶에서 희망을 찾지 못해서거나, 스페인 군인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까닭으로 낙태를 하거나, 아이를 낳더라도 혼혈이라는 이유로 싫어하거나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과달루페 성모님의 발현 이후에는 그분의 메시지를 통하여 이 모든 일들이 중단되었고 모든 생명들을 잘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늘의 한국 사회도 인간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안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생명이 임신의 순간부터임을 인식하지 못하여 제대로 존중하거나 보호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1년 12월호, 글 양 제랄드(서울대교구 자양동본당 주임신부)]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들 모두와 레지오 단원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