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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1-05 08:38
   연중 제 32주간 강론 (루카 20, 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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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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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32주간 강론

2016년 11월 6일 일요일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루카 20, 27-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루카 20, 38)


오늘 제1독서 마카베오 하권 7장의 말씀은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는 열렬한 그리스 문화의 신봉자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점령하는 즉시 예루사렘 성전에 제우스와 아폴로 신상을 세우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 앞에서 절을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러한 명령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목숨을 걸고 우상숭배의 강요에 응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일곱 아들과 어머니의 용감한 죽음을 각오한 신앙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이 자식들에게로 전달되고 그 신앙은 어떠한 협박과 시련에도 이겨내는 힘을 갖고 있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이 살던 당시에 정치적으로 로마의 권력과 헤로데 가문과 손을 잡고 권력을 누리던 자들로서 모세의 율법(모세 오경)은 인정하였지만, 구전과 예언서는 거부했고, 오로지 현세 만을 중요시하는 삶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이 없다고 부정함으로써, 오로지 현세에서 잘 먹고 잘 사는 풍요로움 만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한 질문은 이러한 그들의 삶과 생각의 정당성을 인정 받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이들의 질문의 율법적인 근거는 창세기 38장 8절, 신명기 25장 5절, 룻기 3장-4장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율법은 결혼이나 가족제도에 대한 율법이 아니라 상속에 관한 율법이고 한 집에 살고 있는 형제에게 만 적용이 되는 율법입니다. 그리고 칠형제가 차례로 한 여자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는 토빗기 3장 8절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이들이 질문하는  일곱 형제와 부인 한 명의 이야기는 부활이 있다면, 적어도 현실적인 삶의 조건에서는 매우 곤란한 상태를 야기할 수 있게 됩니다.  이들의 질문은 겉으로는  타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것은 하늘나라에서의  삶의 조건을 모르는 상태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만일에 부활이 있다면 이 부활은 현세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두가이들이 형제가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 다른 형제가 죽은 이의 아내와 결혼해서 형제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이 율법은 부활이 있다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대를 이으면 될 것이기 때문에 부활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의 다름을 갖고서 설명하십니다. 왜곡된 의도의 질문에 순수한 답변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사후의 부활문제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부활 후의 세계는 이승의 연장이 아니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죽은 자의 히느님이 아니고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선포하십니다

결혼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제도입니다. 그런데 저승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때문에 종족 보존을 위한 자녀생산의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이 말은 결혼의 중요한 목적중의 하나가 소멸됨을 말합니다.  즉 결혼의 관계가 부활 후에는 새로운 인격적인 관계로 승화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활한 사람은 천사들과 같아져서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인들이 죽은 뒤에도 하느님을 섬기고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되살려 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눈에는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 앞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 는 말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서 살고, 죽은 다음에는 새로운 생명을 받아서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설명에 율법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루카 20, 39)하고 호응을 합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박해하던 바리사이들도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두가이들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시는 예수님께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세상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참 성공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가르쳐주십니다. 또한 당신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축복도 허락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본질이 세상적인 야망이나 목적을 달성하고 명성을 누리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주님께서 주인이 되는 한 주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느님이시라는 말씀을 깊이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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