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1/2015
평온한 마음은 몸의 생명이고 질투는 뼈의 염증이다.
잠언 14:30
A tranquil mind gives life to the body, but jealousy rots the bones.
Proverbs 14:30
윤영주 아우구스티나님 글입니다
주님의 영이 사울을 떠나고 주님께서 보내신 악령이 그를 괴롭히자, 비파를 잘타고 주님께서 함께하여 주시는 다윗이 사울곁에서 지내게 됩니다. 다윗은 사울의 무기병이 되었고 사울이 악령에 시달릴 때마다 비파를 타서 악령을 떠나가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한 다윗을 사울뿐 아니라 사울의 아들 요나탄도 사랑하게 됩니다. 요나탄은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여 그와 계약을 맺고 자신의 겉옷과 칼과 창까지도 다윗에게 줍니다.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출전하여 승리하자 군인들을 통솔하는 직책을 맡게 됩니다.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을 죽이고 돌아오자 이스라엘 모든 성읍의 여자들이 손북을 치고 환성을 올리며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하며 흥겹게 노래합니다. 사울은 이 말에 몹시 화가 나고 속이 상하여 다윗을 시기하게 됩니다. 어느날 악령이 사울에게 들이닥쳐 발작을 일으키자 다윗이 어느 날처럼 비파를 탑니다. 이때 사울이 다윗에게 창을 던지나 다윗은 두번이나 몸을 피하게 됩니다. 사울은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며 자기에게서 돌아서셨고 그가 출전하는 곳마다 승리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사울은 다윗을 시기합니다. 거인 골리앗을 돌멩이로 죽이고 출전하는 곳마다 승리하는 다윗, 비파를 잘 탈 뿐만 아니라 힘센 장사이며 전사로서 말도 잘하고 풍채도 좋은 다윗, 자신의 아들인 요나탄마저 그를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고 하느님께서도 그와 함께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자신을 맞는 여인들마저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하며 다윗을 칭송함니다. "이제 왕권말고는 더 돌아갈 것도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일개 장수이고 나는 주님으로부터 '기름부음'받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닌가? 다윗도 그렇지만 나도 전쟁영웅이 아닌가? 나만큼 뛰어난 외모를 가진 사람이 또 있겠는가? 게다가 애송이같은 다윗에 비하면 나는 노련한 권력가가 아닌가? 이렇게 부족함없는 임금인 사울의 가슴에 질투라는 감정이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하느님까지 다윗과 함께하는 것을 보니 두려움마저 생깁니다. 다윗만 죽는다면....? 질투심에 사로잡힌 그는 이성을 잃고 다윗을 죽이려합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당대의 위대한 작곡가인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궁정음악가인 살리에르는 위대한 음악가를 꿈꾸었고 자신의 재능이 최고이기를 바랐으며 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차르트를 대면한 후 그의 천부적 재능을 확인하는 순간 살리에르는 좌절하며 신을 원망합니다. 모차르트같이 철없고 제멋대로인 사람에게는 천부적인 재능을 주고, 노력가이며 하느님을 찬양하길 원하는 자신에게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알아볼 정도의 능력밖에는 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와는 다를 수 있지만 결국 살리에르는 질투 때문에 이후로는 자신의 음악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뿐더러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의심을 갖게합니다.
많은 것을 소유한 사울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사울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자신을 소인배로 만들어버린 그가 안타깝기만 합니다. 시기와 질투는 마음을 상하게 하고 뼈에 염증을 가져올만큼 몸도 상하게 합니다. 평온을 잃어버린 사울의 눈먼 시기심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주님, 인간적인 눈으로만 타인을 보지않게 해주시고 통속적인 비교로 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게 해주소서. 이웃이 성공한 것을 입으로만 축하하지 않고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허락하시고, 타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부러워하지 않고 작은 저의 재능에 감사하게 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