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편, 2부, 2장
신경 제5절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신경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같은 조목에서 고백하고 있는데, 이는 주님의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인간을 영원한 생명에로 이끄시는 것이 파스카 신비이기 때문이다(631).
제1단락 그리스도께서 저승에 가셨다(632~635)
신경은 여기서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묻히시고 저승에 가시어 (사흘만에 죽은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여러 번 죽음을 강조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교회 역사의 초기 수세기 동안에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is)의 영향으로 주님의 신성(神性)뿐 아니고 그분의 인간성에 대하여 구구한 해석이 설왕설래하였다. 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참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고 다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뿐이라는 그리스도 가현설(假顯設?Docetism)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성서는 분명하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는 속이는 자이고 그리스도의 적입니다』(2요한 7절1요한 4, 2~3 참조)하였으니 가현설은 분명한 이단(異端)이다.
가현설에 의한다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사실이 아니고, 인간들의 착각일 뿐이고, 백보를 양보해서 예수님은 수난으로 기절하셨다가 얼마 후에 깨어나셨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신경은 『죽으시고 묻히시고 저승에 가시어 사흘만에 죽은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가신 예수님의 육신은 무덤에 묻히시고, 신적 위격과 결합된 영혼은 저승에 가시어 구원을 갈망하는 의인(義人)들에게 구원을 선포하셨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죽으심의 깊은 의미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자녀들은 다같이 피와 살을 가지고 있으므로 예수께서도 그들과 같은 피와 살을 가지고 오셨다가 죽으심으로써 죽음의 세력을 잡은자 곧 악마를 멸망시키시고, 한 평생 죽음의 공포에 싸여 살던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히브 2, 14~15).
중세 신학자들은 죽은 의인들의 대기상태를 림보(Limbo.古聖所)라 하였지만, 림보의 존재나 상태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교회 당국은 림보에 대하여 교리적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한국교회는 오래동안 신경의 이 대목을 「지옥에 나리사」라고 직역하여 사용하였지만, 여기서 말하는 지옥이 천당에 대비되는 지옥과 혼동되기 때문에 70년대에 「고성소에 내리시어」로 고쳤다. 그러나 고성소라는 개념이 신경의 본 뜻과 잘 맞지 않아서 수년 전에 「저승에 가시어」로 수정하였다.
그랬더니 일부 신자들이 왜 불교 용어인 「저승」을 신경에 넣었느냐고 하였다. 그러나 저승은 죽은 자의 세계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 말이다. 산 사람의 세계를 이승이라 하듯이 이승과 저승은 같은 맥락의 우리 말이다. 참고로, 저승을 뜻하는 불교 용어는 명부(冥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