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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1-18 20:20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22>발터 카스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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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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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22>발터 카스퍼(상)


새로운 역사 지평 안에서 교회 정체성 새롭게 규정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 1933~ )는 20세기 1960년대 후반기부터 현 시점에 이르기까지 눈부신 학문적 결실을 줄곧 거둠으로써 세계 곳곳의 유수 교육기관들로부터 신학 발전에 기여한 걸출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등 세계 정상급 대 신학자로 국제적 신망을 누리고 있다.(지난해엔 아시아에 있는 교육기관으로는 최초로 수원가톨릭대가 그에게 23번째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오늘날 카스퍼 추기경은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요셉 라칭거)와 함께 가톨릭 신학계에서 쌍벽을 이루는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신학자로 손꼽힌다.


 카스퍼의 신학 사상은 19세기 초에 형성된 '가톨릭 튀빙겐 학파'의 학맥을 잇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신학도 시절부터 시작해 교수와 주교, 그리고 추기경 신분을 두루 거치는 반세기 동안 이 학파에 속하고 있음을 때로 공언하며 '튀빙겐 신학자'로 불리는 것을 못내 자랑스러워했다. 

 


시대 사상과 열린 자세로 대화하며 신학 입장 정리 


 카스퍼는 1933년 3월 5일 독일 서남부 뷔르텐베르크주 방겐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톨릭 교육자 부친과 독실한 신앙의 소유자 모친 밑에서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히틀러 통치 시절에 소년기를 보냈다. 부모 영향으로 매일 미사와 각종 신심 행사, 행렬 등에 거의 빠짐없이 참여하면서 사제가 되려는 뜻을 품기 시작했다.


 그는 전쟁 종결 후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한 뒤 1952년부터 로텐부르크-슈투트가르트교구 소속 신학생 신분으로 튀빙겐대에서 신학 과정을 이수하기 시작해 자유 학기만을 외부 뮌헨대에서 보낸 이외에는 줄곧 튀빙겐대에서 수학했다. 이는 그가 스승들 인도를 받으며 튀빙겐 학파 정신으로 양성되고 '튀빙겐 신학자'로 살게 되는 길로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튀빙겐 학파는 19세기 초 창시자 드라이(J.S. Drey)를 위시하여 히르셔(J.B. Hirscher), 묄러(J. A. Mu"hler), 쿤(J.E. Kuhn), 스타우덴마이어(F.A. Staudenmaier) 등 일단의 신학 교수들이 세속화 과정이 돌이킬 수 없이 확산되고 교회의 세속적 영화가 쇠락하던 격변기를 맞아 교회와 신학의 쇄신을 도모하면서 그리스도교 진리의 정체성을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새롭게 제시하고자 시도, 당대 교계와 신학계에서 신선한 충격과 함께 광범한 반향을 자아냈다. 


 그들은 교회와 학문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당대에 형성되는 시대적 사상 조류와 대화하는 열린 자세로 신앙과 신학의 기본 입장을 새롭게 정립하려고 했다. 또한 후기 계몽주의, 낭만주의, 독일 관념론은 물론 당대에 형성된 개신교 신학사상 등 모든 사조와 주도 인물을 상대로 비판적 학술 토론이나 논쟁을 거치면서 새로운 역사의식 지평 안에서 교회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려고 진력했다. 


 강생 원리로서 그리스도 사건을 역사 안에 자리매김한 기반 위에서, 그들은 교회 전승(傳承)을 하느님 계시가 그리스도교의 역사 안에서 지속하는 현재가 되도록 생동적으로 움직여나가는 '자기를 전승하는 실재'로 파악했다. 더불어 낭만주의의 유기체(有機體) 사상을 교회 역사적 발전의 해석 도구로 원용해 계시 전체를 역사 안에서 펼쳐지는 유기체의 생동적 체계로 파악하는 가운데, 계시가 오로지 역사를 통해서만 현재를 사는 교회 공동체에 이르게 된다고 파악했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하는 계시가 교회의 '지속적인 현재에로의 자기전승' 안에서 역사적으로 발생한다고 규정하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원리'는 튀빙겐 학파 신학 전체의 핵심적 통찰로 간주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시대의 개방된 조류 안에서 신학을 수행하는 스스로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자칭하기도 했다.


 카스퍼는 이 학파의 전통 안에서 외견상 순탄한 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재학 중 작성한 연구논문이 수상의 영예를 누리는 등 성공적으로 수학 기간을 보내고 1957년 4월 6일 소속 교구 사제로 수품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1년간 보좌 생활을 하고 1958년부터 3년간 튀빙겐 신학원에서 신학생을 지도한 그는 1961년부터는 3년간 가톨릭 신학부 조교로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기 시작해 1962년 '로마 학파 안에서의 전통 교설'을 주제로 작성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교수 자격 취득을 위해 '쉘링(F.W.J. Schelling)의 후기 철학 안에서 역사 철학과 신학'을 주제로 논문을 작성한다. 그는 이 논문에서 쉘링이 초기 자연철학에선 자유의 자연적 전제를 밝혀냈고, 후기철학에선 근세적 자유철학의 한계를 숙고했다고 밝힌다. 이어 그 때문에 이 노선에서 관념론 후기 사상으로 이어지는 사상적 계보가 파악돼 근세 후기 이래 등장한 제반 사상 조류와 비판적이면서도 건설적인 입장을 정립할 수 있게 됐다는 소견을 개진했다. 논문은 1964년 「역사 안의 절대적인 것. 쉘링의 후기철학 안에서 역사의 철학과 신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카스퍼는 교수 자격을 취득하고 난 뒤 31세의 젊은 나이에 뮌스터대 신학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그곳에는 한 해 앞서 부임해온 라칭거가 교의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고, 그가 1966년 튀빙겐대로 학교를 옮기자 후임자로 칼 라너가 뮌헨에서 부임해 왔다. 라너는 1969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교의신학 교수로 봉직했다. 또한 라너의 제자이자 친구인 메츠(Johannes Baptist Metz)가 기초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으니, 뮌스터대에는 세계적 명성이 자자하던 신학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던 셈이다. 


 그런데 라칭거가 1969년 튀빙겐을 떠나 레겐스부르그대학으로 옮긴 뒤, 카스퍼는 그 후임으로 모교 교수로 부임했다. 그는 레겐스부르그대에서 1970년부터 1989년 교구장 주교로 임명될 때까지 출중한 신학 활동을 펼치며 세계적 신학자로 급부상하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카스퍼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결정에 따라 1999년 교구장직에서 물러나,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사무총장 직무를 맡았고 2001년엔 추기경 서임과 함께 평의회 의장직에 임명됐다. 그는 그리스와 러시아 정교회를 위시해 성공회와 개신교 등과의 교회일치를 촉진하고자 활발히 노력해 교회일치에 우호적 풍토 조성에 크게 이바지하는 동시에 유다교와 관계 증진을 위해서도 진력했다. 2010년 은퇴한 그는 계속 로마에 거주하면서 교회 주요 현안과 관련한 자문 요청에 응하고, 세계 각국에서 초청하는 신학 강연이나 학술회의에도 꾸준히 참여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며 집필 활동도 열정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주요 저서들



 카스퍼가 신학활동을 시작하던 무렵인 1960년대 후반기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의 신학적 해석과 실천적 수용을 둘러싸고 가톨릭 신학계 안에서 편차 큰 입장들이 충돌해 갈등을 빚던 시절이었다.

 일부 신학자 층은 근세 이래 진행돼온 사회 및 교회 전통으로부터 이탈을 통한 변혁을 도모하는가 하면, 다른 층은 전통적 입장을 변함없이 고수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카스퍼는 이러한 혼란기에 튀빙겐 학파의 '역사적 사고'를 자기 신학사상의 핵심 기조로 삼으면서 교회 신앙의 역사적 도정을 파악하고, 이를 오늘을 위한 신앙의 길로 만들고자 주도면밀하게 작업에 매진했다.


 카스퍼의 이러한 노고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그가 1969년과 1970년에 뮌스터대와 튀빙겐대에서 모든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신앙 입문' 공개강좌 내용은 1972년 같은 이름의 책으로 나왔다(국내에선 「현재와 미래를 위한 신앙」으로 소개, 1979). 이후 그를 일약 세계적 교의신학자 반열에 올려준 저서 「예수 그리스도」(1974)와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1982)이 출간됐고, 후속작 「가톨릭교회, 본질ㆍ실재ㆍ파견」(2008)은 고위직 수행 관계로 뒤늦게 출간됐다.


 이 밖에도 「신학과 방법론」(1967), 「신앙과 역사」(1970), 「신학과 교회」(I, 1984; II, 1999), 「믿는 사람은 떨지 않는다」, 「자애」(2012) 등이 또 다른 주요 저서로 꼽힌다. 이와 함께 독일 '발터 카스퍼 추기경 연구소'를 통해 2007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교회의 전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교회와 그 직무들」,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에로의 도정」 등이 전집으로 속속 나오는 중이다.





 

심상태 몬시뇰(수원교구,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장)


 ▲1971년 사제수품

 ▲1975년 독일 튀빙겐대 졸업, 신학박사(교의신학)

 ▲1976~1991년 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

 ▲1991년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설립 

 ▲1993~2005년 수원가톨릭대 교수

 ▲2005년 몬시뇰 서임

 ▲주요 논문 및 저서 「교의 해석의 제 문제」 「신학토착화의 기본문제 고찰」 「익명의 그리스도인」 「인간: 신학적 인간학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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