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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03 06:03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13> 에드워드 스힐벡스 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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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건석
    조회 : 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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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신학을 접하며 연구 매진
 
 스힐벡스가 신학을 시작한 시기는 사변론적인 스콜라 신학, 토미즘이 여전히 팽배한 가운데 신학을 갱신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는 루방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맡은 페터 신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고, 현상학뿐 아니라 당시 토미즘과는 다른 신학적 방법론을 배웠다. 특히 아담의 신학을 소개받았는데 이는 교의신학을 기점으로 그리스도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학과 역사비평을 통해 강생하신 인간 예수, 인성을 지니신 예수, 인간의 심리적 차원 등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법론의 그리스도론이었다. 교의를 중심으로 사변론적인 그리스도론이 아닌 그리스도론은 당시 가톨릭 신학계에선 상당히 획기적이었다.
 
 스힐벡스는 신학과정을 마친 박사학위 준비를 위해 1945년부터 2년간 파리에서 보냈다. 기간에 그는 숄슈아 도미니코 공동체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훗날 2 바티칸공의회에서 핵심적 역할을 이브 콩가르, 마리 도미닉 쉐뉴를 만나면서 새로운 형태의 신학을 접했다. 스힐벡스는 이들을 통해 교부신학과 중세신학의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시기는 당시 로마로부터 강의 금지령을 받은 쉐뉴 신부의 개인적 도움으로 역사비판 방법론을 실천한 때였다. 그리고 소르본대에서 실존주의 철학을 수학한 기간이었고, 노동 사제들과 만난 기간이었다.
 
 파리에서 돌아온 스힐벡스는 루방대에서그리스도, 하느님과의 만남의 성사(1951) 박사학위를 받는다. 이는 성사론을 역사적 측면에서 분석한 논문으로 신학계에 아주 좋은 반향을 일으켜 여러 언어로 번역됐고, 성사신학 쇄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힐벡스는 1958 루방대에서 강의를 마치고 네덜란드 니메그대에서 1983년까지 교의신학과 신학의 역사 등을 강의했다. 당시 네덜란드에선 구원의 역사적 측면에 대한 고찰이 생소한 것이어서 이를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신학 쇄신의 필요성을 확신한 그는 여러 어려움에도 길을 용기 있게 나아갔다. 다행히 학생들과 심리학자, 사회학자들은 그를 옹호하고 지지했다.
 
 스힐벡스는 1962 요한 23 교황의 2 바티칸공의회 개막 연설을 듣고 깊은 안도의 숨을 쉬었는데, 교황께서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신앙 핵심이 담긴 교회 가르침, 교의(dogma) 있지만 교의 내용은 내용이고,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방식이기 때문에 이에 쇄신이 있어야 함을 언급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네덜란드 주교단의 공식 대변인으로 적극적으로 공의회 준비를 했다. 그는 공의회가 신학을 쇄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라너, 이브 콩가르, 마리 도미닉 쉐뉴에 의해 쇄신된 신학이 인정받는 계기가 자유롭게 신학할 있는 분위기가 됐다고 회고한다.
 
 그는 전반기에계시와 신학, 하느님과 인간, 결혼은 성사다, 세상과 교회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그리스도, 하느님과의 만남의 성사 신학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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