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이시고 자비로우신 까닭에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사랑하시는 데서 기쁨을 느끼시는 까닭에 데레사가 내린 첫 번째
결론은 단 한순간도 하느님을 홀로 버려두지 말아야 하며, 언제든지 하느님 앞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 어린 딸을 곁에 두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으로 알고 있었던 데레사는 영성체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수도자나, 열심한 신도들이 매일 영성체하기를 열화같이
바라고 실행하는 것을 보고 얼른 수긍이 가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데레사의 다음 말이 그 해답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내가 영성체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위해섭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보고자 하시고, 또 보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만족스럽게
해 드리려고 그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자서전 A)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하느님
앞에 머물러 있는 것! 그것도 아이처럼.
"내가 천국에 갔을 때 그곳이 생각했던 것만큼 놀랍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는 놀란 척하겠어요.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려서는 안될테니까요."라고 말할 정도였던 데레사는 성안(聖顔) 또는 성면(聖面) 즉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을 통해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분의 얼굴은 나의 빛이요 숭배의 대상입니다."
데세사는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통해 하느님을 바라보았는데,
바로 그 모습 속에 그분의 고통의 흔적과 더불어 그 분의 신성(神性)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데레사 연구자는 말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그를 바라볼 때, 그의 어깨나 등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랑을 확인하는 것과 같이 데레사도 사랑하는 하느님의 거룩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분을 사랑했고, 인간의 모습을 한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봄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니, 이것이
곧 관상이며, 관상은 진리에 대한 단순한 눈길로도 표현된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한 것이었다. 데레사는 복음을 읽는 것도 사랑하는 그분의 성격을 알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니 복음을 실행하는 것 역시 사랑하는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길이 아니고 무엇이랴!
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를 `현대의 성녀'라고 하는 것은 그가
단순히 현대에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현대인에게 완덕에 도달하는 길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완덕에 이르는 길, 다시 말해서 성인이 되는 것은 기적이나
예언을 한다든지, 혹은 탈혼(脫魂)에 빠지거나 세상의 명성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매일 당하는 고통이나 어려운 일들을
통해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데에 있다는 사실을 데레사는 보여 주었던 것이다.
`작은 꽃' 데레사는 또한 작은 것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저를 하늘까지 올려줄 승강기는 오! 예수님, 당신 팔입니다. 당신 팔을 타고 올라가려면 저는
커질 필요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작은 채로 있어야 하고, 점점 더 작아져야 합니다.."
데레사는 또 사랑하며 고통을 겪는 것이 행복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행복이라고 단언한다. 그가 남긴 마지막 시에 이런 진주가 박혀 있다.
"사랑하며 고통을 겪는 것은 가장 순수한 행복입니다." 이 시는
`데레사의 사도신경' 이라고 까지 말하는 이가 있는데, 성모님의 고통을 관상하고, 이 관상에서 자기 고통의 정당성과 이 고통을 기쁨으로 튀어오르게
하는 발판을 데레사는 발견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고통, 회망없는
고뇌, 부조리한 혼돈상태 같은 것, 불의 앞에서 겪는 고초,
냉혹한 인간 생활의 율법 앞에서의 저항, 이 모든 것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데레사는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담대하게 노래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어린아이’는 겸손과 순수함의 상징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 바로 ‘겸손과 순수’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또 한가지는 우리가 어린아처럼 자신을 낮추면 하늘나라에거 가장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라에는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의 구분이 없을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큰
사람인 것입니다.
묵시록 19장 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 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어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다.”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해득실에 따라서 아이들은 기뻐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