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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02 06:03
   '작은 길'의 영성, 성녀 소화 데레사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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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건석
    조회 : 2,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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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레사는 영혼 구하기를 열망했다.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관대하고도 열렬하게 자신을 봉헌했다. 아주 짧은 시간에 하느님께서는 그녀로 하여금 지금껏 살아오던 좁은 세계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셨다. 데레사는 더 이상 소심증이라든가 세심증, 과민성 등에 속박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성숙했고, 학문에 대한 것을 열렬히 갈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은 벌써 하느님께 바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갈망들이 데레사의 관심을 독점하지는 못했다. 영성서적들이 그녀가 취하는 매일의 양식이 되었는데 특히 `준주 성범'은 외우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스도를 본받자고 하는 주제를 담고 15세기에 토마스 아켐피아가 라틴어로 쓴 이 책(Imitatio Christ ; Imitation of Christ遵主聖範)은 모두 4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리스도인 생활의 기본 원리를 명백히 밝힌 영신지도서로서 세계적으로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기도 하다.그 후 아버지께 가르멜에 들어가고 싶다는 원의를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가 울면서 작은 백합의 흰꽃을 따주셨는데, 이 작은 꽃을 `준주성범' 2편 제7장의 `예수님을 만유위에 사랑해야 하느니라.'라고 적힌 페이지에 넣어두었다면서 자서전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아직도 거기에 있습니다만, 꽃줄기가 뿌리 근처에서부러졌는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오래지 않아 당신 작은 꽃의 뿌리를 잘라서, 그것이 땅에서 시들 게 버려두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이렇게 제게 보여주시는 것같았습니다." 작은 꽃(小花) 데레사는 이 자서전을 1895년에 썼는데, 그 이듬해부활절 때 병이 들어 다시 그 이듬해 1897 9 30에 세상을 떠났으니, 과연 오래지 않아 하느님께서는 당신 `작은 꽃'의 뿌리를 자르신 것이었다. 아버지가 따주신 백합꽃을 넣어둔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사랑하는 이를 버릴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홀로 모든 것 위에 사랑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영성체는 데레사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예수님께서 데레사의 영신 지도자이셨다."고 말한 셀리나는 다시 이렇게 증언했다. "우리 언니들인 마리아와 폴리나는 가르멜에 있었으므로, 데레사와 나는 더욱더 친밀 해졌습니다. 저녁마다 우리는 여름 별장 창가에서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으며, `영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님, 고통과 멸시를 받게해주소서'라는 십자가의 요한 성인 말씀을 거듭 이야기하며 우리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유일하게 우리 마음을 이끄는 것은 경멸뿐이며, 바랄 가치가 있다고 여기게 되는 것은 오직 고통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고 버림받으신 예수님, 당신만이 저의 유일한 행복이십니다."라는 점을 일깨워준 끼아라 루빅의 메시지를 연상케된다.

 

"우리의 유일한 행복, 이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아프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우리 생각의 첫 자리와 우리의 마음 한가운데 두는 것을 말합니다. 즉 덕()을 살면서 자신을 절제하고 매일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끼아라 루빅, `완전한 기쁨'이라는 묵상 중에서)

 

다시 예수 아기의 데레사 이야기로 돌아가자. 어느 주일에 데레사는 미사경본에서 빠져나온 상본(象本) 한 장을 보게 된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한쪽 손에서 흐르는 피에 눈길이 멎자 그만 큰 충격을 받고 만다. 그 피가 땅에 떨어지는데, 그것을 서둘러 받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데레사의마음은 쪼개지는 듯 아팠다.

 

"저는 마음 속으로 언제나 십자가 밑에 지켜서서, 거기서 흘러나오는 하느님의 이슬을 받아 가지고 영혼들 위에 쏟아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 `목마르다!' (요한 19:28)고 하시는 부르짖음이 쉴새없이 제 마음에 울려왔습니다. 이 말씀이 제 마음 속에 알지 못할 치열한 열정을 불질러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께 마실 것을 드리고 싶었고, 저 자신도 영혼의 갈증으로 목 이 타는 것을 느꼈습니다."데레사는 자기를 끈 것은 성직자들의 영혼이 아니라 대 죄인들의 영혼이어서,영원한 불꽃에서 죄인들의 영혼을 빼내고 싶은 욕망에 몸이 달아올랐다고 썼다.

 

"그 열정을 북돋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제 소원을 어여삐 여기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데레사는 한 사람의 큰 죄인, 즉 살인죄를 세 번 범하고 사형집행을 기다리는프란지니가 회개하지 않고 죽을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데레사는 어떤 일을 해서라도 그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썼다.

 

"주님, 불쌍한 프란지니를 당신께서 용서해 주시리라는 것을 저는 확실히 믿고있사오니, 만일 그가 고백을 하지 않고, 또 아무런 통회의 표시도 보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저는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믿습니다. 그러나 주님, 저를 위로 해 주시기 위하서 그가 통회했다는 징표 하나만이라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데레사의 기도는 그대로 이루어졌다. 마르탱씨는 아이들에게 신문을 읽히지않았지만, 사형 집행이 있은 다음날, 데레사는 `라 크루아'(십자가)신문을 집어들었다. 부리나케 펼쳐 보니, 이게 왠일일까? 데레사는 감격한 나머지 눈물이 새어나와 어쩔 줄을 몰랐다. 프란지니는 고백도 하지 않고 교수대에 올라가서 그 처참한 구멍에 목을 들이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영감의 충동을 받아, 몸을 돌이키더니 사제가 내미는 `십자가'를 빼앗아 들고서는 그 거룩한 상처에 세 차례나 입을 맞추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 다음에 그의 영혼은 천국에 올라가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義人) 아흔 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 더 기뻐하실 것'(루가 15:7)이라고 선언하신 하느님의 자애 깊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데레사는 청한 표를 받았고, 이 표는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신 은혜의 충실한 표지였다고 그는 적고 있다. 이로써 그의 확신은 결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데, 데레사는 사랑의 하느님을 발견했고, 하느님께서 사랑이시라는 증거를 갖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데레사를 온통 뒤바꾸어 놓으심으로써 당신 사랑을 보여 주셨고, 데레사는 이 개인적인 체험에 더해서 자신의 기도로써 프란지니의 회개까지 얻어낸 것이다.

 

 pluie2.jpg회개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 죄수를 일컬어서 데레사는 생애의 말년에, 자신의 `첫 아들'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겨우 열 네 살에 죄인의 회개를 불러일으킨 이 때부터 한층 더 하느님을 위해 고통 당하고, 죄인의 회개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열망을 지니게 된 데레사는 리지외의 맨발의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는 길을 찾아 나섰다. 한 때는 선교사가 되어 자신의 삶을 선교 사업에 투신하고 싶어 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관상 수도원에 입회해서 이교도들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이 수녀원에는 이미 데레사의 두 언니 마리아와 폴리나가 입회해 있었다.

그러나 데레사가 가르멜에 들어가기까지는 많은 고통을 바쳐드려야 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총장 신부가 입회를 유보하면서 21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통보해 주었고, 데레사와 그녀의 아버지는 교구 주교님께 입회를 도와달라고 청하기도 했으나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침내 아버지는 데레사와 그 언니 셀리나를 대동하고 로마 순례길에 올라 1887 11 20일 교황 레오 13세를 알현했다. 데레사가 개인적으로 수도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고 청하자 교황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받아들여지겠지." 하시는 것이었다. 그런 어려움을 겪은 끝에 12 28일 위고냉 주교가 리지외의 가르멜회 곤자가의 마리아 원장 수녀에게 입회를 허가하는 회답을 보내왔다. 그러나 데레사는 사순절이 지나서 1888 4 9일 부활 8일 축제 때에야 봉쇄 수녀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15 3개월 때였다.

 

"제가 가르멜에 온 것은 허원 전 심사 때 예수님의 성체 앞에서 선언한 것처럼 `영혼들을 구하고 특히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라고 자서전에서 쓴 데레사는 관상을 통해서 인간이 받기를 거부하는 자비로우신 사랑을 발견하고, 이 사랑에 자신을 봉헌하기에 이른다.

 

기도할 때도 메마름만을 체험한 데레사는 파리 가르멜 수녀들이 번역한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책들을 읽고 거기에 완전히 빠져들 게 되었다. 십자가의 요한이 16,17세의 데레사에게 준 것은, 데레사가 자기 영혼 안에서 느끼고 있던 직관,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는 무한한 사랑이시라는 직관에 대한 확증이었다.

 

`가르멜의 산길' `영혼의 노래'를 양식으로 하면서 `사랑의 산 불꽃'을 읽은 데사는 십자가의 성 요한을 살았고, 또한 동시에 깊은 고뇌 속으로 들어갔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고 온갖 좋은 것을 아낌없이 베푸시는 분이시라는 요한의 묘사가 데레사의 체험에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가난을 체험하고 배운 것이다. 영혼이 절대적으로 가난할 때, 절대적인 `'()가 될 때만 하느님과 일치하게 된다는 것을 십자가의 요한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 것이다. 하느님을 향한 여정에는 두 가지 빛, 즉 하느님 사랑의 빛과 자기 자신의 가난을 인식하는 빛이 계속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 아기의 데레사 성녀가 받은 가장 큰 은총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깨달음이었다고, 예수 아기의 마리 외젠 신부는 말한다. 데레사 성녀가 세상을 떠난 지 몇 해가 지난 후 교황 비오 10세는 자주 영성체 하기를 권장했고,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긍정적인 성화의 길로 이끌어 준다는 점을 상기시킨 외젠 신부는 "19세기의 성덕과 고행은 부정적인 것이었다."면서 여기에 반해 우리 시대의 영성은 긍정적이며, 바로 이것이 성공을 가져온 요인으로서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희생을 크게 강조했으나 오늘날에는 현존과 접촉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는 지적이다. 과거에는 희생에 어떤 숭고한 위엄이 깃들여 있었으나 사랑과 자비에 대해서는 그 만큼의 이해를 갖고 있지 못했는데, 옛날 사람들의 영성은 대다수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으며, 그러한 요 구대로 살아갈 만큼 강한 사람이 극히 적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자비에 대한 인식이 부각되면서 아주 큰 영향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 생활의 길을 터 주게 된 것이고, 이렇게 구분되는 두 시기 중에 새로운 시대의 선구자가 예수 아기의 데레사 성녀라는 것이 성녀를 깊이 연구한 신학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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