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죄한 영혼들은 겁이나 불안을 조금도 몰랐으니까,
세상에서 괴로워하는 자신들의 가엾은 작은 동생을 불쌍히 여기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집안의 막내둥이인 까닭에 언제나 언니들의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해왔고, 그들도 세상에
살아 있었더라면 똑같은 애정을 저에게 보여주었으리라는 것을 환기시키면서,어린애 모양 천진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천국에 들어갔다고 해서 저를 잊을 리가 없으며, 도리어 그들은 하느님의 보물집에서 은혜를얻어낼 수 있는 처지에 있으니까 저를 위해서 거기서 평화를 집어주고, 이리해서천국에서도 또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자서전 A)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영혼들과의 통공, 이는 그리스도교의 전통관습이기도하다. "그리스도 평화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 형제들과 여정의 형제들 사이의 결합이 죽음으로서 중단되지 않고, 오히려 영신적 보화와 교류로 말미암아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 교회의 변함없는 신앙"이라고,
공의회 문헌은 기록하고 있다. (교회헌장 49 : 가톨릭 교회 교리서 955) 그러니까 지상에서 순례자로 살아가는 이들과 남은 정화과정을 거치고
있는 죽은 이들 그리고 하늘나라에 도달한 복된 이들 모두가 일치해서 오직 하나의 교회를 이룬다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히 하늘 나라에 도달한
이들께 전구로써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도미니코(1170-1221) 성인이 임종 때 형제들에게 남긴 유언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힘을 준다.
"울지들 마시오. 죽은 후에
나는 여러분에게 더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있을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여러분을 도울 수 있을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그 생애를 조명하고 있는 작은 꽃 예수
아기의 데레사 성녀도 죽음 직전에 언니 수녀에게 "저는 하늘로 올라가서
땅을 위해 유익한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세상에 남아 있는 우리가 천국 낙원에 든 것이 확실한 영혼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잠시, 데레사 성녀의 부모에 관한 증언을 들어볼 필요가 있겠다.
셀리나 마르탱, 즉 `성녀 데레사의 즈느비에브'란 이름으로 서원한 이 수녀가 1910년9월
14일에서 28일 까지 증언한 내용인데, 그녀가
데레사와 떨어져 지낸 것은 데레사가 가르멜에 들어간 1888년 4월부터
셀리나 자신이 가르멜에 들어간 1894년 9월 까지 꼭
6년간 뿐이었다고 한다. 이 기간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지냈고,
1894년부터 데레사가 임종할 때까지는 가르멜에서 함께 살았던 것이다. 이 수녀는
특히 가르멜에 들어갈 때 카메라를 가지고 감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다른 어떤 성인들한테서보다도 데레사에 대해서는 더욱더 확실한 사진을보게 해 준
공로자인 것이다.
"영원한 삶은 우리 부모님의 지배적인 관심사였습니다.
어머니께서 한 번은 폴리나에게 `나는 천국을 위해 기르고자 많은 자녀들을 두고 싶었다.'(1877.
3. 4.)라는 편지를 쓰셨습니다. 나의 어린 오빠, 언니들이 숨질 때마다, 어머니의 신앙정신은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고, 이들 어린 천사들이 천국에 있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받게 해주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마르탱씨 부인을 가엾게 볼 필요가 없어요. 그 부인은 자녀들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하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증언한 셀리나는 또 "저희 부모님은 매일 미사에 나가셔서, 가능한 한 자주 성체를 모셨고, 두 분 다 사순절 동안 내내 단식과 금육재를 지키셨습니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이웃 사람들에게 지극히 친절했고, 이웃의 모든 잘못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주었으며, 무엇보다도 사제들에게 큰 존경심을 갖고 계셨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성인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훌륭한 부모님 슬하에서 성녀가 태어난 것이라고 한다면, 이들 가정을 지나치게 영웅시하는
것이 될까?
죽은 오빠와 언니들에게 청한 데레사의 기도는 지체없이 응답을
받았다. 그의 마음에는 곧 평화의 달콤한 물결이 넘쳤고, 세상 사람들뿐만아니라 천국에 있는이들로 부터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데레사는 알 게 되었다. "그때부터 오빠와 언니들에 대한 제 신심이 커졌고, 그들과 더불어 자주 대화를 하고 귀양살이의
슬픔과 오래지 않아 저도 그들을 따라 영원한 본향에 가고 싶은 제 소원을그들에게 말하기를 좋아했습니다."(자서A) 세상살이를 `귀양살이'라고 한 것은 19세기 당시의 시각이었고, 데레사가 오늘우리
시대에 살고 있다면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슬픔과 번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의 기쁨과 회망이며 슬픔과 번뇌인 것"(사목헌장1)을 익히 알아보고, 이웃 안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섰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데레사는 이 때, 1886년 성탄날
밤에 기적과도 같은 큰 은총을 입게 되었다. 큰언니 마리아가 가르멜에 들어간 뒤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어쩌다 잠시라도 정원을 손질하고, 또는 셀리나 언니가 없을 적에는 저녁에 화분을들여놓는 일도 있었는데,
이런 일은 다만 하느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었기에 사람들의 감사를 받을 생각을 말았어야 마땅했다. 그것을 데레사는 잘 알 고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를 못했다. 조그마한 봉사를 받고 셀리나가 좋아하거나 깜짝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면 데레사는 마음이 흡족하지 않아서 눈물을 흘리며 불만을
드러내고는 했던 것이다.
데레사는 또 사랑하는 어떤 사람에게 무심코 걱정을 끼치는
일이 있으면 그것을 이겨나가거나 울음을 참지 못하고 막달레나 처럼 울음을 터뜨려서 잘못을 작게 하기는커녕 더 크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잘못에 대한 걱정이 지날 때쯤이면, 이번에는 운 것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는 하는 것이었다. 옆에서 아무리 타일러도 그는 이 결점을
고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 해, 만 열네살 생일을 앞둔 성탄
날 성삼위의 환희로 비추는 빛나는 밤에, 사랑스러운 갓난아기 예수님께서 데레사 영혼의 어둠을 찬란한 빛으로
바꿔주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12월 25일이었다.
데레사는 자정미사에서 성체를 영하고 `뷔소네'로 일컬어진 리지외의 집에
돌아와서 벽난로 안에 구두를 가지러 갈 생각을 하니 마냥 기쁘기만 했다. 이 옛적 관습은 데레사 형제들이
어렸을 때 그토록이나 그들을 즐겁게했기 때문에 셀리나는 데레사가 식구들 가운데 가장 어리다고 해서 그를 어린애로 대접하느라고 이 관습을 계속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버지도 막내가 그 `요술쟁이 구두'에서 한가지씩 꺼내는 크리스마스 선물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아이들과 함께 기뻐해 주시고는 했던 것이다.그런데 아버지는 이날따라 몹시 피로한 기색으로 벽난로 안의 데레사 구두를 보시더니 퍽 귀찮은 듯한 말투로,
"자, 이제 다행히 금년으로 마감이로구나!" 하시는 것이었다. 데레사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애처럼 성탄을 함께 놀아줄 필요가 없을 만큼 자란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그러나 이 때 모자를 벗으려고 이층으로 올라가고 있던 데레사의 눈가엔 금세
물기가 고이는 것이 아닌가. 이층에 있던 셀리나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아이고, 하느님! 또 얼마만한 눈물의 홍수가 쏟아질런지요!"
하는 마음에서 겁이 덜컹 났다. 데레사는 이 순간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셀리나는 제 감수성을 잘 아는 까닭에 제눈에 눈물이 글썽해졌습니다.
셀리나는 그토록 저를 사랑했고, 제 설움을 이해했으니까요."셀리나는 실제로, "오, 데레사야!
내려가지마. 네가 지금 구두를 보는 것이 너무 괴로울테니까."
하고 벽난로가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말렸던 것이다."그러나 데레사는
이미 이전의 데레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 마음을 바꿔주셨던 것입니다. 눈물을 참고 빨리 층계를 내려가서 울렁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며 구두를 집어 아버지 앞에 놓고 여왕과 같이 행복한 태도로 모든 물건을
기쁘게 꺼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은 기쁜 현실이었으니, 어린데레사는
전에 네 살 반적에 잃어 버렸던 마음의 힘을 다시 찾아 영원히 잃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서전
A)
그 해 성탄날 밤이 데레사를 송두리째 바꿔놓았고 그 영혼을
단 한 순간에 성숙시켜 주었다. 훗날 즈느비에브 수녀는 데레사가 그날 밤에 자기 안에서 일어던 변화의
배경을 자세히 설명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나는 데레사의 갑작스런 변화를 직접 목격했고,
또 난생 처음으로 그녀가 그전 같으면 몹시 처량해 했을 실망스러운 상황 중에서도 자신을 완전히 다스리고,
그러면서도 아버지께로 가서 그렇듯 사랑을 가지고 격려해 드리는 것을 보았을 때, 마치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그이후로 다시는 변하는
일이 없이 항구하여, 데레사는 결코 자기의 감수성의 지배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데레사의 침착성에만 국한 된 것이 아 니라, 밖에서도 활짝 피어나 열정과
애덕을 실제로 표현하는데 관심을 쏟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