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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02 06:00
   '작은 길'의 영성, 성녀 소화 데레사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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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건석
    조회 : 3,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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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레사는 생후 몇 개월 동안 생명에 위태로울만큼 심한 위장장애로 고생했다.

이것은 신체발육 뿐만 아니라 아이의 성격형성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아기는 세상과의 첫 접촉을 입 또는 말로써 갖게 되는데, 데레사는 이것이 별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런 아이들은 감수성이 훨씬 더 예민하게 마련인데, 데레사는 유년기에 극단적인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1877 8 27, 통증이 대단한 골수암을 앓던 어머니의 죽음은 그 때 네 살 반이었던 어린 데레사의 마음에 크나큰 심리적 충격을 일으키게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좋았던 내 성격이 일변했어요. 그렇게도 활발하고, 그렇게도 마음에 있는 것을 잘 드러내던 내가 수줍고 조요한 아이가 되었고, 극도로 예민해졌어요. 누가 조금 쳐다보기만 해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서전 A)

 

어머니를 여의고 지나치게 애정의 갈증을 느끼게 된 데레사는 가족의 분위기 속에 묻히는 것이 편안했고, 그 속에서 아버지와 언니들의 사랑에 감싸여 있는 것이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아버지 마르탱씨는 딸아이들을 외가 가까이서 지내게 하려고 1877 11 15일 리지외(Lisieux)로 옮겨 살았다. 데레사의 외삼촌인 게랭씨는 이곳 성바오로 광장 곁에서 약방을 내고 있었는데, 그들 부부에게는 아이가 둘 있었다. 아홉 살짜리 요안나와 일곱 살의 마리아였는데, 마리아는 나중에 리지외의 가르멜에서 데레사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 다음 날부터 마르탱씨 가족은 뷔소네에서 살았다. 뷔소네는 리지외에 있는 그들의 집을 말한다.

 

마르탱씨의 맏이와 둘째 딸은 르망의 방문회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았고, 아래로 세 딸은 베네딕도 수녀원의 학교 기숙사에서 공부했는데, 데레사는 셀리나 언니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기숙사 생활을 해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셀리나가 학업을 마치고 기숙사를 떠나게 되자 데레사는 더 이상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언니없이 홀로 그곳에 머물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기질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곧 이어 데레사는 두 번째 시련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때의 충격은 정신질환의 형태로 나타났다. 어느 날 데레사가 폴리나 언니에게 가르멜에 들어가고 싶다는 소망을 고백하자, 폴리나는 자기도 같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렇지만 데레사가 나와 함께 가기는 아직 어리니까 네가 길을 떠날만큼 클 때를 언니가 기다려 줄께."하고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폴리나는 어린 아이에게 한 이 약속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어느 날 데레사는 폴리나가 곧 가르멜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다. 이 새로운 애정박탈은 데레사를 완전히 혼란속으로 몰아넣었다. "저는 가르멜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만, 폴리나가 저를 떠나 수녀원에 간다는 것과 그가 저를 기다리지 않으리라는 것, 두 번째 엄마를 잃어 버리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의 제 마음의 근심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서전 A)

 

이 때문에 데레사는 자신의 표현대로 `이상한 병' 을 앓게 되었는데, 애정박탈로 인한 일종의 신경증이었다. 이 병이 겉을 드러난 것은 폴리나가 `예수의 아녜스'수녀로 착복 하던 날이었다. 데레사는 이날 예식에 참석했고, 수도복을 입은 폴리나가 데레사를 안아 주기까지 했지만 결국에는 아픈 어린이를 업고 와야 했고 곧바로 침대에 눕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 시련을 겪는 동안 데레사는 자기의 혼란상태를 완전히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벽에다 자기 머리를 짓찧었고, 얼굴이 일그러진 유령을 보기도 했다. 데레사로서는 자기 자신을 더 이상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괴로운 일이었다.

 

"제가 걸린 병은, 폴리나가 첫 번째로 가르멜에 들어간 데 성이 나 마귀의 장난이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마귀는 장차 우리 집안으로부터 받을 손해에 대해서 제게 앙갚음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인자하신 하늘의 모후께서 가날픈 당신 작은 꽃을 지키고 계시고 하늘의 옥좌에서 그 꽃을 내려다 보고 웃으시며, 그 꽃이 아주 부러지려는 그 순간에 폭풍우를 멎게하시려고 등대하고 계신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자서전 A)

 

가족들은 데레사가 앓고 있는 병을 이해할 수 없었고, 병세가 몹시 악화되자 아버지는 파리에 있는 `승리의 성모' 성당에 미사를 청하는 편지를 보내 9일기도를 시작한다. 9일 미사 동안의 어떤 주일, 1883년의 성령강림 대축일에 `미소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 데레사는 성모께서 미소지으시면서 나타나신 것 을 뵐 수 있었다.

 

"....성모님의 지극히 아름다운 미소였습니다. 그때 제 모든 근심과 괴로움이 사라져 버리고 두줄기 굵은 눈물이 눈시울을 적시며 뺨으로 고요히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수한 즐거움에서 우러나는 눈물이었습니다. `! 동정녀 마리아께서 저보고 웃으셨다.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제가 성모상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을 보고 마리아는 `데레사가 나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과연 소화는 다시 살아나, 그를 부드럽게 품어주던 부드러운 `태양' 이 영원히 그에게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한꺼번에 하시지 않고 부드럽게 즐겁게 꽃을 일으켜 세우시고 강하게 만들어서 5년 후에는 기름진 가르멜산 위에서 활짝피도록 해 주셨습니다.."(자서전 A)

 

이렇게 해서 이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이때 데레사가 `마리아' 라고 적은 이는 큰언니 마리 루이즈인데, 그도 또한 가르멜에 입회하게 된다. 폴리나 언니가 준 `감실 안에 계신 하느님의 작은 꽃'이란 상본을 즐겨 들여다 보던 데레사는 자기도 그분의 작은 꽃이 되고자 에수님께 자신을 바치고 싶었다 고 자서전에서 쓰고 있다. 이 글을 쓸 때는 이미 수도생활을 7년 동안 하고 있었는데, 그는 `큰 성녀' 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 소원은 망령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는, 항상 `큰 성녀'가 되겠다는 한결같이 대담한 자신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아무 공로도 없으니까, 제 공로를 믿는 것이 아니고, 오직 덕과 거룩함 바로 그 자체이신 하느님께 바라는 것입니다. 홀로 하느님께서 제 약한 노력을 만족히 여기시어 저를 당신께까지 끌어올리시고, 저를 당신 공로로 덮어주셔서 성녀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성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큰 성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자기 주변에서 보고 느끼게 되는 현상과는 정반대의 마음가짐이었다. 사람들은 하느님과 흥정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사의 은혜를 많이 받아놓았고 공로도 많이 쌓았으니 영원하신 아버지 앞에 나아가 심판을 받게 될 때, 하느님께서 자기들의 업적을 보시고 자기들을 위해 마련해 두신 자리를 주실 것이라고 믿거나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데레사는 달랐다.

 

"나는 내 공로를 내세우지 않겠습니다. 내놓을 것이 있다면 오직 주님의 공로 뿐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내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좋으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날 사랑하시도록 내어드릴 뿐입니다." 이 말에 덧붙이기를, "이렇게 해서 아주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데레사가 가르치는 내용의 핵심이라고, 가르멜 영성의 대가로서 프랑스 가르멜 회원이었던 예수 아기의 마리 외젠 신부는 말한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어머니를 대신한 폴리나 언니마저 봉쇄 수도원으로 들어가 버리자 애정박탈감으로 인한 일종의 신경증세로 고생한 데레사는 동정 성모의 미소를 통해 기적적으로 치유되는 은총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3년 후 큰언니 마리아가 가르멜에 들어갔을 때 데레사는 "아직도 세심증에 사로잡혀 있다."고 자서전에 쓰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언니에게 말할 수 없게 되자 그는 하늘 쪽으로 몸을 돌이켰다. "저는 저보다 한 걸음 앞서 천국에 올라간 네 명의 작은 천사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때 이미 세상을 떠난 오빠 둘과 언니 둘을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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