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수녀는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인데요."라며 응수하고 나서, 그 말이 약간 농담이려니 생각하고 웃고 있던 데레사 자매를 보고,
"내가 자매에게 명령하는 것이니, 어린 시절의 추억을 모두 기록하세요."
하고 말했다. 하느님의 여종 데레사는 그 당시 아녜스 수녀가 원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순명으로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데레사는 자유시간에 써서
1896년 1월 20일 아녜스 영명축일 전날
저녁 기도시간이 되어 아녜스 옆을 지나면서 그 공책을 전해 주었다.
성녀는 자서전을 세권 두고 떠났는데, 첫째는 위에서 말한 대로 폴리나 언니에게, 둘째는 마리아 언니에게, 그리고 셋째는 공사가의 마리아 원장 수녀께 각각 드렸던 것이다.
이 조각들은 성녀의 1주기에 맞춰서 <한 영혼의 이야기>란 이름으로 성 바오로 출판사에서 처음 세상에 소개했고,
그 후 1956년 <예수 아기의 성녀데레사의
자서전>이라는 제목으로 리지외에서 출판되었다.
이 밖에도 성녀는 편지와 시와 묵상, 그리고 연극 극본까지도 두고 갔는데, 이러한 저작들은 우리가 그를 아는데 필요한 1차적이고 핵심적인 원전임에 틀림없다.
"인생은 풀과 같은 것,
들에 핀 꽃처럼 한 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도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없는 것,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처음부터 영원히 한결같고
그의 정의는 후손 대대에 미치리라."
데레사의 부모님은 아홉 자녀를 두었는데, 9남매 모두 노르망디주 알랑쏭(Alencon)에서 태어났다.
첫째가 마리 루이즈, 1860년 2월
22일생이고 둘째는 마리 폴리나, 1861년 9월 7일생이며 셋째 마리 레오니가 1863년
6월 3일생, 그리고 넷째 마리 엘레느와 다섯째
마리 요셉 루이, 여섯째 요셉 요한세자가 1864년과
66년, 67년에 태어났으나 각각 네 살 반과 5개월,9개월만에 숨지고 일곱째 마리 셀리나가 1869년
4월 태어났으며 여덟째 마리 멜라니 데레사는 1870년에 태어났으나
3개월만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리 프랑수와즈 테레즈 마르탱(Marie
Francoise There`se Martin)이 1873년에 태어났던 것이다.
다섯째와 여섯째는 아들이었는데, 그들 부모는 아들이 태어날 때마다 사제로 봉헌하고 싶었지만 하느님께서는
둘 다 일찍 데려가셨고, 다른 두 딸도 역시 아기 때 떠났으니 살아 남은 아이는 딸 다섯이었다.
딸들은 모두 수녀가 되었다. 그 중 셋은 리지외의 가르멜 (Carmel
de Lisieux)의 수녀가 되었다.
아버지 마르탱씨는 데레사를 특별히 사랑했는데, 그러한 사랑이 아이를 약간이라도 비뚤어지게 하지는 않았느냐고,
`악마의 대변자' 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시성소송 청원자에 대칭이 되는 `신앙 변호인' 즉 검사의
집요한 태도가 때로는 소송에 반대한다는 인상을 주는 까닭에 비공식적으로 그를 가리켜 `악마의 대변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1910년 8월, 신앙변호인으로 나선 피에르 테오필 뒤보스크 신부의 물음에 아녜스 수녀가 증언한 대목을 보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이가 가정 어리고 영리하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특별히 사랑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버릇없이 만들지는 않으셨습니다.
아이가 세 살 되던 해의 어느날, 버릇없는 말로 아버지께
"아빠가 이리로 와요!" 라고 했을 때, 아버지는 아이를 꾸짖어,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아이에겐 단 한 번의 꾸중으로 충분했으므로 그 이후부터 아이는 늘 대단히 공손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언니들 중에서도 특별히 그의
어머니 노릇을 하게된 폴리나, 즉 아녜스 수녀는, 그 아이가 한
번도 불순종한 기억이 없다고 증언했다.
모든 일에 허락을 청해 왔습니다. 한가지 좋은 실례로, 아버지가 그
아이에게 산보를 가자고 하시면, 아이는 `폴리나에게 가서 물어보고 올께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산보를 가자고 계속 종용하시더라도 만일 내가 산보 갈 허락을
하지 않으면, 아이는 그 즉시로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가끔,
그 아이는 아버지가 자기를 데리고 산보하러 나가시는 것이 어떠한 기쁨이 되는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울먹인 때도 있었습니다."
데레사는 그의 자서전에서 가족들을 매우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성인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어요."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같은 가족애에 대한 집착이 `하느님
사랑' 과 대립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와 언니들에게 오랫동안 기대어 살아왔던 의존상태로부터 그가 어떻게 풀려나게 되었는지, 이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