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10>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상)
예수 그리스도 사건, 역사
안에서 실현된 사랑의 길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는 스위스 루체른에서 명문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빈, 베를린, 취리히에서
독문학을 전공했고, 1928년 「현대 독일 문학 속에 나타난 종말론적 문제의 역사」라는 논문으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논문을 제출한 다음 30일 피정을 했는데, 이것이 전환점이 돼 예수회에 입회했다. 그 후 독일 플라흐에서 철학을, 프랑스 푸르비에르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발타사르는 학업을 마치고 1936년 사제품을 받고 나서 2년 동안 신학 잡지 「시대의 소리들」을 간행하는 일에 헌신했다. 1939년부터는
스위스 바젤에서 대학생 지도신부로 활동했다.
# 요한 공동체 재속회 설립 예수회 탈퇴
발타사르는 바젤에서 자신의
생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 두 인물을 만났다. 하나는 칼 바르트(K.
Barth)였다. 바르트는 교의적으로 신정통주의를 표방한 그리스도 중심주의자였다. 발타사르는 당시 바젤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던 바르트와 대화 혹은 논쟁을 통해
'그리스도론 중심의 신학'에 큰 영향을 받았다.
발타사르에게 영향을 준
나머지 한 사람은 스페이어(Adrienne von Speyer)로 개신교에서 개종한 여성 신비가다. 발타사르는 종종 스페이어의 사상과 자신의 사상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삼위일체 하느님의 심오한 신비를 익히고 심화했다. 뿐만
아니라 발타사르는 스페이어와 대화를 통해 '세상 안으로 파견된 교회'의
사명을 새롭게 깨닫고,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와 함께 1945년 '요한 공동체'라는 재속회를 설립,
이 공동체를 돌보기 위해 1950년 예수회를 탈퇴했다.
그 후 그는 1956년 스위스 쿠르교구 소속 신부가 돼 교회와 새로운 합법적 관계를 맺는다.
스페이어와 요한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데 주력한 그는 1960년 독일 튀빙겐대 신학부에서
제안한 교수직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는 독일 전역을 순회하면서 왕성하게 강연하고 피정을 지도했으며, 수많은 책을 저술했다. 1973년엔 국제 가톨릭 잡지 'Communio'를 창간했다.
그의 많은 저술은 1984년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가 수여한 '바오로 6세 상'을 받은 후부터 인정받기 시작했다. 발타사르는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됐지만 서임식 이틀 전인 6월 28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 전통 철학과 정반대의 길 걸어
발타사르는 엄청난 양의
저술을 남겼다. 그는 평생 90여 권의 저서, 550여 편의 논문, 100여 권의 번역서를 남겼다. 이 방대한 저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은 15권으로 이뤄진 3부작으로, 제1부 「영광」(전 7권, 1961~1969), 제2부 「하느님의 드라마」(전 5권, 1973~1983), 제3부 「하느님의 논리」(전 3권, 1985~1987) 그리고
「후기」(Epilog, 1987)로 구성돼 있다.
특히 이 3부작은 초월주(超越疇)들, 곧 모든 개별 존재자에 관한 특성에 직접 관련돼 있다. 스콜라 철학에
의하면 그 특성은 일성(一性), 진성(眞性), 선성(善性) 그리고 진성과 선성의 일치라 할 수 있는 미성(美性)이다. 전통 철학은 주로 일성에서 출발해 진성과 선성을 통해 미성에
이르는데, 발타사르는 정반대의 길을 간다. 이런 의미에서
발타사르는 자신의 철학을 형이상학(形而上學)이 아니라 인이상학(人而上學)이라고 했다.
그는 먼저 미(「영광」)에서 출발한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드러내는 계시를 중점적으로 다룬 제1부는 세상의 미와 하느님의 영광 사이의 차이와 그 관계를
논한다. 이어서 발타사르는 선(「하느님의 드라마」)을 다룬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시 안에서 당신 자신을 내어주고, 그 내어주는 행위는 선하기 때문이다. 제2부는 하느님의 자기증여를 중점적으로 다루는데, 하느님의 절대적 자유와
인간의 유한한 자유 사이의 관계가 주된 관심사다. 마지막으로 발타사르는 진(「하느님의 논리」)을 다룬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내어주면서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은 참되다는 것이다. 제3부는 유한한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하느님 말씀의 무한한 의미를 파악하는지를 살핀다.
3부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무한한 자유와 인간의 유한한 자유 사이에서 이뤄지는 드라마인 제2부다. 그리고 발타사르가 3부작에서
다룬 핵심 내용은 1963년에 출간된 두 저서 「믿을 만한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와 「단편 속에 있는
전체」에 이미 암시돼 있다.
발타사르의 신학사상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작품이 워낙 많은 데다 그의 신학사상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신학자들에
따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선 발타사르의 세계관 혹은 역사관을 개괄적으로 제시하는 데 만족하고자
한다. 발타사르가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을 통해 그의 신학적 핵심사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종말론, 신학의 출발점
발타사르의 작품을 두루
살펴보면, 그의 신학이 종말론적 색채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완성에 대한 물음의 지평에서 자신의 신학을 전개했다.
발타사르는 종말론의 개념을
마지막 사건에 관한 가르침으로 이해한다. 마지막 사건이란 이 세상 일상 삶에서는 감춰지고 베일에 싸인
영혼이 궁극적 모습을 드러내 영원한 운명에 이르는 사건이다. 따라서 종말론은 감춰진 영혼의 영원한 운명을
드러내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발타사르는 종말론을 개별 인간에게만 한정하진 않는다. 모든 인류는 물론 역사와 우주 전체와도 관련지어 언급한다. 세상
모든 것은 지금 감춰진 그 영원한 운명인 완성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어떻게 그 영원한 운명인 완성에 이를 수 있는가'다.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과연 완성될 수 있는가. 어떻게 완성을
향해 나갈 수 있는가. 발타사르는 그리스도교 이전에 신화와 종교와 철학이 완성을 추구했던 모든 시도를
크게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는 '환영(幻影)의 길'이다. 여기에선 인간과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그 기원의 움직임을
통해서만 다뤄진다. 유한한 인간과 세상은 무한하고 완전한 절대자에게서 떨어져 나왔기에, 인간의 완성은 그 절대자에게로 귀환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참된 존재는 오직 무한하고
완전한 절대자 하나뿐이고, 그 밖의 모든 유한한 존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세상의 실재는 환영에 불과하다. 따라서 유한한 존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절대자에게 귀환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발타사르는 불교와 힌두교, 그리스의 철학자들(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 스토아학파 등)이 이런 길을 추구했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비극적인 투쟁의 길'이다. 첫
번째 길이 현존재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절대자의 세계로 도피하고 있다면, 두 번째 길은 그 모순과
정면 대결을 시도한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와 비극적인 상황 자체를 오히려 자기 자신을 정화하는 조건으로
여기고, 자신의 모순에 맞서 적극적으로 투쟁한다. 투쟁하는
인간적 노력으로 자신의 완성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발타사르에 의하면 그리스의 비극(헤라클레스와 엠페도클레스), 영웅들(괴테의
파우스트, 니체의 권력의지)이 이런 길을 걸었다.
발타사르는 두 시도가
궁극적으론 완성에 도달할 수 없다고 봤다. 이런 길은 어디까지나 유한한 인간의 기획이며 시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력을 통해선 역사가 결코 완성될 수 없다고 발타사르는 항상 확신했다.
# 예수 그리스도, 역사의 기준과 규범
따라서 발타사르는 완성에
이르는 세 번째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사랑의 길이다. 하느님에
의해 기획되고 실행되는 길이다. 하느님께선 존재적으로 불확실하고 상처를 입고 불완전한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와 당신을 알려주고, 친히 인간을 구원하셨다. 이 사랑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죽음과 부활로 실제 역사 안에서 실현된다.
세 번째 길의 결정적인 점은, 인간이 완성에 도달한 구원 사건이 역사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어떤 표지를 보이거나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유한한 인간이 돼 오심으로써
구원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이다.
그러므로 발타사르는 인간과
그 역사를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장소이며 규범과 기준이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초자연적인 영원이 역사 안에 개입하고 현재화된 사건이며, 이런 개입을 통해 유한한 인간이 하느님의 영원
안에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인간의 모든 역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역사의 시간은
영원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역사의 규범이며 기준이다.
김선태 신부
▲1989년 수품(전주교구)
▲1997년 스위스 프리부르대 기초신학 전공, 신학박사
▲1997~2009년 전주가톨릭신학원 교수
▲2009~현재 전주교구 화산동본당 주임,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위원 ▲주요 논문 :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와 요한 밥티스트 메츠 신학에서 역사의 주체」, 「다종교 사회에서 한국 가톨릭교회의 현실과 사목적 배려」 등 ▲번역서 : 「낫기를
원하느냐」, 「물고기 뱃속의 지혜」, 「하늘은 땅에서 열린다」, 「그대 마음이 원하는 길을 가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