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신비 밝혀
올해 2월 말 교황 직무에서 자진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의 가장 최근 저서인 「나자렛 예수」는 총 3권으로 구성돼 있다. 예수님의 세례부터 거룩한 변모까지 다룬 제1권은 2007년에, 예루살렘 입성부터 부활까지 다룬 제2권은 2011년에, 그리고
유년기 사화를 다룬 제3권은 2012년에 각기 출간됐다.
「나자렛 예수」 제1권 서문에서 베네딕토 16세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 책은 절대로 교도권 차원에 속하는 공식 문헌이 아니다. 이것은 '주님의 얼굴'(시편 27,8 참조)을 찾는 개인적인 탐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누구든 내 견해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나는 그저 독자들에게 공감을 부탁할 뿐이다. 공감 없이는 이해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24쪽).
따라서 교회 문헌적 차원이
아닌 학술적 맥락, 그리스도론적인 흐름 속에서 「나자렛 예수」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 방대한 전체 내용을 다 소개할 수는 없다. 다만
성경 해석의 차원에서 어떤 방법론적 원리가 적용되는지, 특히 기존의 역사비평적 연구 방법론에 대한 비판적
수용과 보완이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설명하도록 하겠다.
「나자렛 예수」는 무엇보다도
현대 성경 주석학의 역사비평적 연구가 남용하면서, 역사의 예수님과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의 일치성에 균열이
생겨 그 간격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1950년대부터는 상황이 바뀌었다.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에 벌어진 골이 점점 깊어만 갔고 이 둘은 완전히 서로 갈라진 것처럼 보였다. 만일 인간 예수가 복음사가들이 제시하는 그분, 교회가 복음서에 기반을
두고 선포하는 그 예수와 그렇게까지 다르다면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에
대한 믿음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1권 8~9쪽).
이는 베네딕토 16세가 요제프 라칭거라는 신학자 이름으로 출간했던 1968년 저서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에서 제기한 문제의식과 동일하다. 이 책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성자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설명하면서 현대 신학이 처한 그리스도론적 딜레마를 소개하는데, 그것은 바로 역사의 예수님과
믿음의 그리스도 사이에서 갈등이다.
"이 두 갈래 길의 딜레마-한편에는 그리스도론을 사실(史實)의 관점에서만 보거나 사실로 국한시키려는 길과, 다른 한편에서는 사실성을 전적으로 도외시하고 믿음에는 불필요한 것으로 배제하는 길-는 바로 현대 신학이 갈피를 못 잡은 채 직면하고 있는 양자택일의 당혹으로 정확히 이렇게 집약된다. 예수냐 그리스도냐. 현대 신학은 그리스도를 일단 제쳐 놓고 우선
역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보는 예수를 찾다가, 이 동향의 절정에 이르러서는 불트만을 통해
예수를 도피하고 정반대 방향을 취해 그리스도로 되돌아갔다. 현 단계에서는 이미 이 도피 현상이 또다시
방향 전환을 일으켜 그리스도를 떠나 다시 예수를 찾고 있다"(202쪽).
이 대목은 현대 신학이
겪고 있는 그리스도론적 난제를 설명하면서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신앙을 정립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설명한다.
베네딕토 16세는 역사의 예수님에 대한 실증주의적 복원 작업을 시도하면서 신앙의 그리스도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것, 아니면 반대로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 같이 아예 역사의 예수님을 배제시키고 신앙의 그리스도만을
말하려는 극단을 비판한다. 이러한 양 극단적 시도로는 결코 신앙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자렛 예수」의 학술적
핵심 가치는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에서 제기했던 그리스도론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이를 직접 성경 해석의 차원으로 적용하는 데 있다. 독일의 가톨릭 성서신학자 루돌프 슈나켄부르크 (1914~2002)가
바로 이러한 역사비평적 연구의 문제점에 입각해 1993년 마지막 작품 「네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저술했지만, 베네딕토 16세는 그 스스로가 역사비평적 방법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슈나켄부르크는 결정적 핵심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이루는 관계, 즉 그분과의 연대성'이다. 베네딕토 16세는 바로 이 구심점에서 출발해, 예수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데 있어 슈나켄부르크를 넘어서고자 시도함을 밝힌다.
베네딕토 16세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구조상 역사비평적 방법론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성경
전체를 하느님께 영감 받은 책으로 보고 단일성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기초적인 방법론적 원리로 제시한다. 그리고
오직 이를 통해서만 역사비평적 연구의 한계를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기본 원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계시헌장」 12항에서 올바른 성경 해석의 첫째 원리로
제시된 '성경 전체의 내용과 일체성에 유의해야 한다는 것'에
근거한다. 이 기초 원리는 16항에서 '신ㆍ구약 성경의 일관성'으로도 표현된다. "신ㆍ구약 성경에 영감을 주신 분이시고 그 저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신약이 구약에 숨어 있고 신약으로
구약이 드러나도록 지혜롭게 마련하셨다"(16항). 「가톨릭교회
교리서」 역시 이 원리를 재확인한다(112항 참조).
이런 맥락에서 베네딕토 16세는 개개의 본문을 읽을 때에도 성경 전체의 빛과 맥락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정경적 성경 주석'의 연구 방법론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추천한다. 더불어 성령의 인도에 따라 본문이 지니고 있는 내면적 개방성을 찾아 읽어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가 성경의 살아 있는 주체이기에 성경 말씀은 교회 안에서 살아 있는 현재의 말씀이
된다는 것, 두 가지를 추가적인 해석 지침으로 제시한다.
베네딕토 16세는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재직하던 1988년 1월 27일 미국 뉴욕의 성 베드로 루터교회에서 열린 '에라스뮈스 강좌'에서도, 바로
이러한 기조 입장에 서서 현대의 성경 주석 방법론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현대의
역사비평 방법에 입각한 주석에서 발견되는 한계들을 수정, 보완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성경 해석에 있어
단순한 실증주의나 엄격한 교회주의라는 양 극단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주석학적 발견에 대한 통시적 접근과
더불어 해석 과정에 있어 함축된 철학적, 신학적 요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베네딕토 16세는 "자기 한계를 인식하는 역사적 해석학"이 "올바로 전개된 신앙의 해석학"과 함께할 때에만
전체적 시각을 형성하는 방법론이 가능하게 된다고 말한다(2권 9쪽). 이러한 방식의 접근이 이뤄질 때, 비로소 역사의 예수님과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그리고 구약과 신약 성경의 관계에 대한 연속적이며 통일적인 전망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두 가지 다른
차원의 해석학을 연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 「계시헌장」에서 제시된 바 있는 통합적 해석 원칙이 그동안 실제로 잘 적용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통합적 해석 원리에 따라 이를 예수님 생애 주석에 적용하며 「나자렛 예수」를 집필한 것이다. 따라서
「나자렛 예수」는 역사적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연대기적이고 지형적인 묘사를 넘어서, 예수님 삶에서 드러나는
신비를 신학적 차원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그려나가고자 시도한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로운 구원이 드러난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라는 신앙고백이야말로
「나자렛 예수」를 통해 드러나는 핵심적 메시지다.
이것은 베네딕토 16세 신학 전체에서 일관성 있게 강조되는 바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하느님의 유일성에 직접 연결돼 있다는 것, 즉 하느님 유일성의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과 신비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오늘날 일부 급진적 종교다원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유한 속에서 무한을 암시하는 신적인 것의 여러 양식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적인 것의 '현현'(顯現)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신앙고백이 베네딕토 16세의 그리스도론 핵심을 구성한다. 이러한 그리스도론 원리를 구체적으로 적용해 역사적 예수님 삶의 신비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이 바로 「나자렛
예수」의 목적이자 핵심적 의미다.
유물론적 경향과 물질주의적
풍조, 실용주의와 실증주의, 현실주의와 행동주의 그리고 극단적인
역사주의와 다원주의가 거센 도전의 물결로 다가오는 이 시대에 '말씀'(Logos)을
통해 드러나는 진정한 구원과 희망의 진리를 선포하며 이를 향해 나아가려는 결단의 요청이야말로, 1968년의
명저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에서 시작해 2012년 출간된 「나자렛 예수」 제3권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제시하는 베네딕토 16세의 핵심적인 신학적
메시지다.
그리스도 신앙이란 진리가
온전히 드러나는 초시간적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희망 가득 찬 전진이다. 이렇듯 신학자 시절 작업부터
드러나는 베네딕토 16세의 진리를 향한 신앙적 희망과 신학적 확신은 이후 오랫동안 신앙교리성 장관직을
거쳐 사도좌 직무를 수행하고 자진 사임하기까지, 교회 안팎의 이견과 비판 속에서도 교회적 투신과 직무적
결단을 통해 '진리의 협조자'로서 살아오고자 노력한 삶으로
구체화돼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다. '진리의 협조자'란 표현은
베네딕토 16세가 주교로서 채택한 사목 표어인 동시에, 그
자신의 일생의 자취와 미래적 희망이 압축된 하나의 상징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