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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19 07:30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마태 23, 1-12) -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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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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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756

2016년 8월 20일 토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마태 23, 1-12)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1-12)

오늘은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입니다. 먼저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가톨릭 굿뉴스 성인편에서는 성인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테셸랭 소렐(Tescelin Sorrel)과 몽바르(Montbard) 영주의 딸인 복녀 알레타(Aletha, 4월 4일)의 아들인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또는 베르나르도)는 부르고뉴(Bourgogne) 디종(Dijon) 근교의 가족 성(城)인 퐁텐(Fontaine)에서 일곱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샤티용(Chatillon)에 가서 공부하면서 청운의 꿈을 펼치고 있었으나, 1107년 어머니의 죽음으로 많은 충격을 받고서 수도생활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원래 시토회의 설립자 3명 가운데 한 명은 아니었지만 흔히들 그를 시토회의 설립자로 부른다. 그가 새로운 수도회인 시토회에 입회한 해는 1112년 4월인데, 그 때 그는 자기 형제 4명을 비롯하여 모두 30명의 친척, 친구들과 함께 베네딕토회 규칙의 엄격한 해석을 따르기 위하여 1098년에 설립된 시토회에 들어갔다. 그들은 원장이던 성 스테파누스 하딩(Stephanus Harding, 4월 17일)으로부터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1115년에 성 베르나르두스는 성 스테파누스 하딩의 지시에 따라 12명의 수도자와 함께 부르고뉴와 샹파뉴(Champagne)의 경계지역에 있는 클레르보라는 고립된 계곡에 수도원을 세우기 위해 파견되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엄격한 규율 때문에 약간의 어려움에 봉착하였으나, 그의 높은 성덕으로 수많은 제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때 그 수도원의 이름을 발레 답신트에서 클레르보로 바꾸었고, 당시 68개의 시토회 수도원의 모원으로 만들었다. 

그 후 성 베르나르두스는 자신의 학덕과 지덕을 활용하여 수도원의 외부 일을 처리하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유럽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중의 하나가 되어 통치자와 교황의 자문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는 대립교황인 아나클레투스 2세의 요구에 대항하여 1130년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Innocentius II) 선출의 합법성을 지지하였다. 또한 그는 로테르 2세를 황제로 인정하도록 롬바르디아(Lombardia)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1140년부터 그는 공적으로 설교하는 일을 시작하여 놀라운 명성을 얻었다. 

1145년에는 전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수도자였던 에우게니우스 3세(Eugenius III)가 교황으로 선출되자, 그는 교황직의 의무에 대한 글을 교황 앞으로 보내어 로마(Roma) 교황청의 남용을 자제하고, 교황이 항상 목전에 두어야 할 종교적 신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교황 에우게니우스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랑그도크(Languedoc)에 파견하여 알비파(Albigenses) 이단을 대항하여 설교토록 하였고, 프랑스와 독일에 제2차 십자군 원정의 열기를 북돋우는 특사로 임명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활동과 심각한 건강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성한 저술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서한과 "아마(Armagh)의 성 말라키아의 생애" 그리고 "신애론"이 영어로 번역되었고, 자신의 수도자들에게 행한 강론은 "아가"로 묶었다. 그는 자신의 저술과 설교에서 성서를 광범위하게 인용하는 이유를 "말씀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아 주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저서와 신심은 오늘의 신자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그는 다양한 기질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으며, '꿀처럼 단 박사'(Doctor Mellifluus)란 칭호를 얻었다. 1153년 8월 20일 클레르보에서 선종한 그는 1170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교황 비오 8세(Pius VIII)는 1830년에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그는 스콜라 학파 이전의 신학자이며, 때로는 '마지막 교부'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문장은 꿀벌통이고 양봉업(자)의 수호성인이다.

인간은 누구나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기를 원합니다.  어느 곳에 가더라도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합니다.  성공한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적인 성공의 요소를 부인하는 것, 이러한 어려움을 감수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면서 주님을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것은 받아들이면서 정작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삶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제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보고 반성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께로 돌아 오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종으로서가 아니라 주님을 떠나서  주님으로부터 자유하는 삶을 살아온 나의 모습을 성찰하게 하십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 신앙이 나의 삶을 구속하는 족쇄가 된다는 생각을 갖게도 합니다. 그래서 자유하겠다고 주님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주님을 떠나 참 자유로 향유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세상의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주님 안에서는 세상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었는데 주님으로부터의 자유함은 나를  세상의 노예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다시 주님의 품안으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온몸과 마음을 당신께로 들어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길을 성찰하고 반성하여 주님께 돌아가세, 손과 함께 우리의 마음도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들어 올리세(애가 3, 40-41)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최근의 모국의 정치현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국민을 섬기겠다고 입만 열면 외치던 사람들이 하고 있는 행태를 보면, ‘섬긴다’는 의미가 일반 국민이 생각하는 것 하고 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하고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를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정치인들이 명심해서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정작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귀들 닫고 듣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듣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귀들 닫아도 되는 사람들이 귀를 열고서 듣고 이들에 대한 비판의 잣대를 더욱 키워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1-12)는 말씀입니다. 귀를 열고 듣는 사람도 닫는 사람도 이 말씀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명심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면서 나를 돌아 봅니다. 우리 사제들을 돌아봅니다. 우리 역시 이들과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의 가르침은 다 실행하고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들의 행실은 따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는 않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무거운 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지우고 공개석상에서 인사받기만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윫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분리된 계급이 아니라 바리사이파에 속한 율법학자를 말합니다. 따라서 광의적으로는 바리사이라고 하면 율법학자까지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삶의 양식을 호되게 비판하시는. 에수님의 이러한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잘 압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애가서의 말씀을 외워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길을 성찰하고 반성하여 주님께 돌아가세, 손과 함께 우리의 마음도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들어 올리세(애가 3, 40-41). 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담고자 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가는 하루이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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