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 메인홈 로그인 | 메일재인증 | 업데이트 알림 | 회원가입 | 관리자 문의 |  사이트맵 |  9 (회원 0)  
ApacheZone
등록된 배너가 없습니다.
등록된 배너가 없습니다.
Home >  강론및기고 >  매일말씀묵상
 
작성일 : 16-06-28 10:23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마태 16,13-19) - 711
트랙백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777  
이글을 내twitter로 보냅니다 이글을 facebook으로 보냅니다 이글을 미투데이로 보냅니다 이글을 다음요즘으로 보냅니다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711

2015년 6월 29일 수요일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마태 16,13-19)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마태16,15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입니다. 먼저 베드로와 바오로 본명을 갖고 계시는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하시도록 기도합니다. 먼저 베드로 성인과 바오로 성인에 대해서 굿뉴스의 성인 소개 편에 나와있는 두 분에 대한 소개를 인용해 드립니다. 

먼저 베드로 사도는    티베리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 베싸이다 출신인 사도 성 베드로(Petrus)는 시몬이라 부르는 요한(Joannes)의 아들로서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그의 아우 안드레아(Andreas)가 그를 예수께 소개했는데, 예수는 그에게 아람어로 베드로와 같은 뜻인 ‘케파’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요한 1,35-42).

그는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베푼 그리스도의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난 곳을 비롯하여, 자신의 장모가 치유되는 장면 등을 목격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면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하고 고백할 때, 주님은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16,18) 하셨다. 그리고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16,19)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며 교황의 수위권을 입증하는 근거로 이해한다. 베드로는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주요 행적에도 항상 그가 함께 자리한다. 또 대사제의 관저에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실도 있다. 어쨌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 신자들의 으뜸으로서 배신자 유다(Judas)의 후계자를 임명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도이자, 기적을 행한 첫 사도이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킨 사도였다. 베드로는 43년경에 헤로데 아그리파에 의해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를 받아 피신하였고,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만인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였다. 

초기 전승에 의하면 그 후 그는 로마(Roma)로 가서 초대주교가 되었고,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인 64년경 바티칸 언덕에서 역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 그의 무덤이 있다. 순교 직전에 그는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주님의 발현을 보았다.

바로로 사도는  베냐민 지파의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도 성 바오로(Paulus)는 당대의 유명한 유대인 랍비 가믈리엘의 문하생으로 예루살렘에서 공부하였다. 그가 회심할 때까지는 사울이라 불렀다. 천막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던 그는 엄격한 바리사이파였고, 그리스도교의 열렬한 박해자였다. 그는 스테파누스(Stephanus)의 순교 현장에도 있었다.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그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34-36년 사이). 이 환시는 그의 극적인 개종을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만들어 주었다.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후 설교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 그는 즉각 유대인들의 맹렬한 반발에 직면하였는데 그에 대한 위협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레타(Aretas) 왕의 총독이 바오로를 잡으려고 성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밤을 이용하여 비밀리에 성벽을 타고 도시를 빠져나갔고, 39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났으며, 바르나바(Barnabas)의 지원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입적하였다. 

그 후 그는 타르수스(Tarsus)에서 몇 년을 지내다가 43년경에 바르나바에 의하여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으며 그곳 교회의 교사가 되었다. 이것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대 전교의 시초가 되었다. 45년경부터 바오로는 세 차례의 전교여행을 하게 된다. 45년부터 49년까지 그는 키프로스(Cyprus), 베르게, 비시디아 안티오키아, 리가오니아를 전교했고, 이 여행에서 이름을 바오로로 개명했다. 이 여행을 마치고 49년경에 예루살렘에 온 그는 베드로(Petrus)와 야고보 및 다른 사도들을 설득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리스도교회의 보편성 확립에 기여한 한편, 그의 이방인 선교를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하도록 하는 등 교회의 체제 면에서도 가일층 진보된 단계를 맞게 하였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직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제2차 전교여행을 계획한다(49-52년). 제1차 전교여행에서 세운 교회들을 재차 방문한 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를 가로질러 갔고 최초로 유럽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는 필리피(Philippi), 테살로니카(Thessalonica), 베레아(Berea)에 교회를 세웠으나, 아테네(Athenae)에서는 ‘알지 못하는 신’을 비판하는 ‘아레오파고’ 법정 진술만 다소 효과를 내었을 뿐 신통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 후 안티오키아로 귀향한 그는 다시 제3차 전교여행을 계획하였으나(53-58년), 2년 동안은 코린토스(Corinthos)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였으며, 에페수스(Ephesus)에서는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이 사건이 유명하다. 5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야고보를 만나 보았고, 이레 동안의 정결 기간이 거의 끝날 무렵에 그는 유대인들에게 곤욕을 치르다가 출동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자기의 개종을 설명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경위를 비롯하여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기도 하였으나, 60-61년 사이에 몰타(Malta) 연안을 따라 로마(Roma)에 갇히게 되었다. 

로마의 클레멘스(Clemens)에 따르면 그 후 그는 에페수스, 마케도니아, 그리스 등지를 재차 방문했고(63-67년), 트로아스에서 또다시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가서 사도 베드로와 같은 날에 처형되었다(에우세비우스의 견해). 테르툴리아노에 의하면 그는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치명 하였다. 

바오로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교 저술가로 꼽힌다. 로마서(코린토스에서 57-58년); 코린토 1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코린토 2서(필립비에서 57년); 갈라티아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콜로새서, 필리피서, 에페소서, 필레몬서(로마에서 61-63년); 테살로니카1, 2서(코린토스에서 51-52년) 및 사목서간인 티모테오서와 티토서를 보냈다. 히브리서는 아마도 다른 저자인 듯하다. 공식 축일은 6월 29일이고, 개종 축일은 1월 25일에 지낸다.(2016년 6월 29일 매일미사 참조)

신앙인은 질문하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가를 질문하면서 실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오늘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깨어서 질문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삶이 바로 질문하는 삶이고 이 질문이 바로 하느님과의 대화이며 기도하는 삶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의 삶은 항상 기도하시는 삶이었슴을 복음서를 통해서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복음 사가들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보도할 때는 중요한 일들과 연관이 있슴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공관복음서에는 함께 보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나오는 이 부분이 있기 전의  부분은 복음서들 사아이에 공통된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들도 있지만 루까 복음서에서 보도하고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 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에 대해서 누구라고 생각하는 지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시기 전에 몇가지 중요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제자들에게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시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들 고치라고 파견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열심히 자신들의 사명을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활동이 헤로데에게 보고가 됩니다. 헤로데는 당황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일도 아니고 옛 예언자들의 일도 아닌 예수님께서 하신 일임을 압니다. 두려움에 쌓인 헤로데는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헤로데는 만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자신들이 한 일들의 보고를 들으시고 벳사이다라는 고을로 가십니다. 그러나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라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시어, 하느님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장정만도 오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는 혼자 기도하십니다.예수님께서 혼자서 기도를 하신 후에 함께 하던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군중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하느냐?”  

이러한 기적을 보았던 군중들이 당신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제자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입니다. 세례자 요한, 혹은 엘리야 혹은 옛 예언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답합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회학자인 마틴 부버가 ‘나와 너’라고 하는 유명한 책을 쓰면서 관게에 대해서 말합니다. 인간사이의 관계와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는 나와 그것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당신 ‘이라고 하는 인격적인 관계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사물이나 물질과의 관계가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가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군중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하느냐?”  하는 그 질문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은 이야기를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와는 상관이 없는 질문입니다. 내 실존이 그 안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내 존재 전체를 갖고 고심 끝에 나온 대답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대답입니다. 하지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즉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은 나의 전삶을 담은 대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3인칭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의 지성 만을 움직입니다. 그러나 2인칭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릅니다. 나의 지성, 나의 의지, 나의 감정 등 나의 전 존재를 담은 답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는 우리의 결단과 다짐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여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확고한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답을할 수 없는 질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매 순간 우리에게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답하기 어려운 이러한 질문을 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나 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다시 한번 나의 신원에 대해서 확인하게 합니다. 나의 모든 삶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하는 삶이어야 함을… 내가 중심이 되는 삶에서  하느님이 중심이 되는 삶이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바로 지금 내가 바쳐야 하는 기도임을 명심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너는 나를 누구하고 생각하느냐?”하는 예수님의 질문을 마음에 담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입으로 만의 대답이 아닌 나의 삶이 닮긴 진지한 답을 삶으로서 드리고자 합니다.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축일을 맞으면서 다시 한번 두 사도를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다 사도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우리 모두의 삶에 베어나기를 기대합니다. 



이글을 내twitter로 보냅니다 이글을 facebook으로 보냅니다 이글을 미투데이로 보냅니다 이글을 다음요즘으로 보냅니다  

 
   
 

굿뉴스 Diocese of Austin 마리아사랑넷
이용약관 |  개인보호정책 |  광고안내 |  온라인문의 |   로그인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Korean Catholic Church at Austin, Texas | 6523 Emerald Forest Drive, Austin, TX 78745 | Phone:(512) 326-3225
Copyright ⓒ www.kcc-austin.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