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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26 03:42
   사람의 아들에게 머리를 기대는 삶(마태 8, 18-22) - 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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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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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709

2016년 6월 27일 월요일

사람의 아들에게 머리를 기대는 삶(마태 8, 18-22)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8, 20)

주님을 따르는 삶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이성적으로 따지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쉬운 삶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가 결단을 해야 합니다.  물질적인 삶의 추구에서 영적인 삶의 추구입니다. 

오늘 저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셔는 너는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기 위해서 세상에서 죽을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를 죽은 이들이 지내게 내버려 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과 동일한 복음을 루카복음을 통해서 지난 주일에 읽었습니다. 묵상의 내용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짧은 시간에 같은 복음을 갖고서 묵상을 한들 차이가 있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복음의 설명은 같습니다. 그런데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묵상은 다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안식년 (비록 일년이 아닌 6개월이지만 )을 보내기 위해서 한국으로 출발합니다.  주님의 제자됨의 삶이 머뭄이 아닌 파견의 생활이라면 새로운 삶의 장소를 향해서 떠납니다. 사람의 아들은 머물 곳이 없었지만 저는 머물 곳을 정해놓고 떠납니다. 약간의 불편함도 힘들어 하는 저에게 익숙한 곳을 떠나서 낯선 곳에서의 삶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익숙함 때문에 긴장을 푸는 생활헤서 이제는 낯설기 때문에 긴장의 시간들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떠나면서 다짐합니다. 그리고 떠남의 시간동안 묵상 글을 빼먹지 않고 쓸 수 있게해 달라고 주님께 청합니다.  얼마의 기간은 아니지만 거의 2년 이상을 이 묵상 글을 쓰면서 자신의 삶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더욱 축복이었던 것은 바로 주님 안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말씀처럼 “선생님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하는 다짐이 헛말이 아닌 시간을 지낼 수 있도록 주님께 청합니다. 

비록 지난 일요일에 묵상했던 글이지만 다시 한번 글을 여러분들과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어떤 율법학자가 찾아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당시의 윫법학자들은 성경의 해석자이고 설교가였으며, 학교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바리사이들이었고 이들은 백성들의 스승으로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들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대개 자신의 집에 머무르면서 학생들을 모아서 교육을 시켰습니다. 

여기서 율법학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선생님을 따르겟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제자들과 함께 떠돌아 다니는 랍비로 알고 있슴을 타냐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디로 가시든지’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동시에 ‘따르겠다.’라는 말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 2)

예수님께서 이 사람의 청을 명백하게 거부하시지는 않으십니다. 이 말씀에 담겨진 의미는  여우나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예수님 당신께는 집이없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힘든 삶을 감수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 윫법학자의 그 다음 행보는 우리에게 얼려져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께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청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너무나 단호합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죽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그냥 육제적인 죽음의 의미가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살아있는 시간보다 죽어있는 시간이 더 많은 것같습니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삶이란 바로 주님의 뜻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이들의 장례는 죽은 이들에게 맡기라고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면 세속의 인연에 연연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나를 기쁘게 하는 삶이 아니고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어야 한다면 세상적인 인연을 넘어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이들은 모든 것을 두고서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들의 모범이 오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가 감당하고 버려야 하는 것은 바로 세상적인 힘들고 어려운 삶을 감당해야 하고 동시에 세상적인 인연을 하느님 때문에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삶이 참된 제자돔의 삶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과거에 매여서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비록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겠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시간, 한국에서 지내는 시간동안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이기를 다짐합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지만 저에게는 머리를 기댈 사람의 아들이 있슴을 감사하는 시간들을 보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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