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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4-17 22:39
   주님 안에서 양과 목자의 모습(요한 10, 1-10) -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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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2,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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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649

2016년 4월 18일 월요일

주님 안에서 양과 목자의 모습(요한 10, 1-10)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요한 10, 9)

사제는 신자들을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통로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나를 죽이고 자신의 양들을 주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사제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서품 때의 다짐이 퇴색되어 갑니다. 하느님이 중심이 되지 않고 자신의 양들이 보이지 않고 자신 만이 보이는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저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목자와 양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양들의 문이신 당신의 삶을 따라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의 9장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9, 5)라고 말씀하시면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이제 10장에서는 당신 자신을 ‘나는 착한 목자다.’라고 계시하십니다. 이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예수님 당신과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비유를 그들은(9장 40절에 나오는 바리사이들)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이 말씀은 9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9장 41절)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목자와 양의 비유는 우리가 잘 아는 성경에 나오는 비유입니다. 왜 성경에서는 우리를 양으로 표현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유는 양의 특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양은 온순합니다. 말을 잘 듣습니다.  스스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도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무기도 없습니다. 뛰지도 못하고 앞을 잘 보지 못합니다. 거기다가 양은 냄새도 잘 맡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걸핏하면 구덩이에 빠지곤 합니다. 그리고 양은 한 번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목자가 일으켜 주어야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양의 특성들을 고려하면  좋은 목자가 꼭 필요합니다.

오늘의 복음에서 목자는 예수님을 그리고 양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문’은 목자의 권한을 상징합니다. 

1-2절을 보면, 목자와 도둑이나 강도와의 차이를 양우리에 들어갈 때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다른데로 넘어들어가는 것으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른데로 넘어들어간다.’는 것은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에서는 목자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오고 도둑이나 강도는 양을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왔다(10절)고 합니다.

3절에서는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불러서 밖으로 데려나간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양과 목자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지역의 목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양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관습이 있습니다. 따라서 목자가 자기 양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자신의 양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이 양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는 것은 양들을 초원으로 데리고 가는 것을 말합니다. 양들을 풀밭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신다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나는 양들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에서는 목자롤 당신으로 표현하시고 지금은 ‘양들의 문’으로 당신을 표현하십니다. 당시에 양들이 드나드는 문은 하나 뿐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당신자신을 ‘문’으로 표현하시는 것은 당신 만이 양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목자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9)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슴을 강조하십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사도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서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라’(사도 2, 38)고 말씀하십니다. 착한 목자의 양이 되기위한 조건입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는 회개의 세례가 목자의 양이 되기 위한 조건임을 가르쳐줍니다. 이렇게 양이된 우리는 목자가 안내하는 풀밭으로 가게 됩니다. 그 풀밭으로 가게되는 도중에 광야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 광야에는 세가지의 고통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하나는  불의하게 고난을 겪는 것 둘째는 잘못을 저질러서 매를 맞는 것, 그리고 세째는  선을 행하는 데도 고통을 겪는 것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우리가 잘못하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하느님을 생각하는 양심 때문에 불의하게 당하는 고통을 이겨내는 것과 선을 행 행하면서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는 것은 바로 하느님에게서 받는 은총이라고 합니다(1베드 2, 19-21). 이 은총이 우리가 ‘양들의 문’을 통과하게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양들의 문’을 통과하고자 노력하고자 합니다. 서품을 받을 때의 초심을 잃지 않는 하루를 살고자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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