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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3-23 00:09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삶(마태 26, 14-25) -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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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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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627

2016년 3월 23일 수요일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삶(마태 26, 14-25)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마태 26, 25)

오늘 아침에 나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고 질문하는 유다의 모습을 잘 묵상해 보라고 하십니다. 스스로 자신이 죄인임을 앎면서 아닌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바로 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선악과’와 ‘예수님의 마음’, 그리고 ‘소유와 존재’에 대한 주제들은 제가 자주 강의하고 강론하는 주제들입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아담과 이브의 죄와 유다의 배신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그렇게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하던 군중들의 배신하는 모습, 그리고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쳤던 제자들의 모습 등을 그려보면서 이들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임을 깨닫습니다.

유다는 은전 30닢에 예수님을 팔아넘깁니다. 유다는 자신의 양심을 이렇게 은전 30닢에 팔아넘겼습니다. 그는 자신을 얼마나 소중하다고 생각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의 나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면 나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로 무한한 가치를 지닙니다. 모든 창조물은 창조주에 의해서 가치가 결정됨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서 죽게까지 하실 정도로 가치있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만전 강의 중에 ‘자신은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인가를 아는가?’ 하고 자매님들께 물었습니다. 답을 못하고 망설입니다. 그러면 자신에게 있어서 자식들은 얼마나 가치가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무한가치가 있다고 대답들을 하십니다. 부모에게 자식은 무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하느님께 우리 역시 무한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아들마저도 내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부모의 이러한 마음을 자식들이 알아 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많이 사랑하면 할수록 많이 실망한다고 합니다. 소유하기 위한 사랑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우리에게 선악과를 선물로 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사랑은 자유를 선물합니다. 사랑하기에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까지 허락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감사가 우러나옵니다. 선악과를 바라보면서 ‘자유’를 생각합니다. 그 자유함 속에는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선악과는 우리를 소유의 삶에서 존재의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모든 죄의 원인이 인간의 소유함의 삶에서 유래한다면 이제 우리의 구원은 존재로서의 삶으로 나아감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기적인 소유에서 하느님 안에서 인격적인 나눔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연적인 존재가 아닌 필연적인 존재임을 깨닫아야 합니다. 진화론에 의한 우연에 기인한 나의 존재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외적인 것에서, 비싼 것을, 명예와 권력 등등의 것들을 소유함으로 표현하고자 하나 봅니다. 하지만 창조론에 의한, 하느님에 의한 나의 존재는 이미 내가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기에 명품을 소유함으로써, 권력과 명예를 소유함으로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사라질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소유에 대한 유혹을 뿌리친다는 것이 어려움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순간 마다  “19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20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 19-20)는 말씀을 씹고 되씹고 하면서  이 말씀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면서 살아가면서도 수도 없이 상황에 따라서 소유의 유혹에 빠져서 그리스도인이기를 포기했었던 우리가 당시의 군중들과 제자들과 유다와 다를 바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는 베드로처럼 회개의 살을 살아갔던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다 실수할 수가 있습니다. 항상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합리화시켜서는 안됩니다. 후회가 아닌 회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여야 할 것입니다.  매 순간 순간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 26, 25) 하고 묻는 유다의 모습이 저의 모습이 아닌 하루가 되기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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