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444
2015년 8월 21일 금요일
누가 나의 이웃인가?(마태 22,34-40)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마태 22, 36-39)
오늘 나에게 오시는 예수님은 어떠한 모습으로 오시는 분이신가? 하고 생각합니다. 제일 큰 계명에 대해서 알려주십니다. 제일 큰 계명에 대한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 두 계명은 서열의 개념으로 첫째로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중요함을 강조하십니다.
몸과 마음과 목숨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이웃도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와 우리의 이웃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이웃사랑을 통해서 구체화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에 대한 질문이 생각납니다. 루카복음을 보면,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이야기 다음에 착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루카 10, 29-37)가 나옵니다.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에 대한 율법교사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이 비유의 골짜는 바로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바로 사랑을 필요료하는 사람의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참 이웃은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심판에 대한 비유(마태 25,31-46)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바로 세상에서 굶주리고 헐벗고 가난하고 병든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주님꼐 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고려하면 바로 우리의 이웃인 가난하고 소외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함께가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요한 1서 4, 19-21절의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 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 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 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19-21).” 는 말씀이 마음 속 깊이 와 닿습니다.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에제 37,6).”는 말씀을 읽고 또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의 영을 받아야지 살 수 있습니다. 그냥 산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하느님의 영을 받지 않고서는 산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사는 사람은 하느님이 주님이심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생명의 영을 받아야 하고 그 영을 받은 사람은 하느님께서 주님이심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는 나를 이웃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조그마한 사랑이라도 실천하고자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