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442
2015년 8월 19일 수요일
소유에서 존재로의 삶(마태 20,1-16)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마태 20, 15)
오늘 아침에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 갈등 중에 있는 우리 사회가 참된 화해와 평화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가를 착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통해서 알려주십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는 능력있는 사람과 능력없는 사람과의 차등대우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능력있는 사람이 부자가 되고 능력없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의 유무에 따른 삶의 질의 문제가 과도하게 양극화 된다면 사회적인 문제로 발전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왜 공부를 하십니까?’ 혹은 여러분 자녀들은 왜 공부를 과도한 열성으로 시키고 있습니까?’ ‘왜 출세를 해야 합니까?’ 하는 질문에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십니까.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혹은 자식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게하기 위해서라고 답합니다. 삶의 질이 나아지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삶의 질이 나아지는 것을 ‘남을내려 보는 것이나 지배하는것’으로 착각합니다. 참으로 나은 삶을 위한 공부는 나를 위한 공부가 아닌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공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포도밭의 주인은 바로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분이십니다. 자신의 소유인 포도밭을 자신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소유가 아닌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다고 해서 일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자신 만의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회적인 약자를 배려하는 주인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당신의 자녀들을 찾아 나서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만나십니다. 이들과 계약을 맺으십니다. 구원의 약속입니다. 이 구원의 약속은 주인에게 귀속된 약속입니다. 인간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주인은 또 다시 당신의 자녀들을 찾아서 나서십니다. 능력이 있는 순서대로 당신의 포도 밭으로 초대되어 갑니다. 하루가 끝나는 시점에서 마지막 발 걸음을 하시는 주인의 모습을 봅니다. 그 순간까지 주님의 포도 밭에 초대를 받지 못하고 서성대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능력이 없어서 지금까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해의 바다에서 헤메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도 당신의 포도밭으로 일하러 가게 합니다. 능력위주의 사회에서 능력이 없어서 소외된 사람들을 배려하는 주인의 모습입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자신들의 품삯을 지불 받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합류한 사람들에게 1 데나리온의 임금을 지불합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자신들과 하느님과의 계약은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입장에서 비교를 통해서 더 많은 품삯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주인의 생각은 다릅니다.
능력이 있어서 아침 일찍 스카웃이 되었던 사람이 오후 5시에 와서 일한 사람하고 동일한 보수를 받는 것에 대해서 항의를 합니다. 일반적인 우리의 생각으로는 너무나 당연핳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포도밭 주인의 생각은 소유의 개념을 존재의 개념으로 바꾸도록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참 소유는 나만의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잘 사는 것임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 공동체의 삶의 중심에 하느님이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이렇게 하느님의 사랑의 중심에 우리인간들의 이웃에 대한 배려와 감사가 함께하는 나라임을 보게 됩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자신에게 필요이상의 것을 사회적인 약자들을 위해서 내어 놓는 사회, 이러한 가진 자의 배려에 감사하는 사회, 바로 이러한 사회가 하늘나라임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을 나의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는 그 사랑이 능력이 없어서 일할 기회를 찾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면, 이러한 도움을 받은 사람들도 당연히 이러한 배려와 사랑에 감동을 받고서 자신도 앞으로 이러한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할 것입니다.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이러한 배려와 이에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어우러져서 우리 사회는 좀 더 나은 사회로 발전되어 갈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세상의 논리로서가 아닌 하느님의 논리로서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