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433
2015년 8월 8일 토요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마태 17, 14-20)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 20)
오늘 저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듣는 것이 아니고 진지하게 들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앞 부분에서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모세와 엘리야를 보고서 그곳에 머물기를 원한다고 예수님께 말했을 때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소리가 구름 속에서 들여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명하라고 하느님께서 명령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마귀들린 아이에게서 마귀를 쫒아 내시는 기사가 이어집니다.
마귀가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자신의 아이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달라고 청합니다. 먼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마귀를 쫓아 달라고 청했지만 그들이 쫓아내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9장 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과 질병을 치유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사도들이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복음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마르 9장 29절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의 능력에 의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벌써 이들에게 교만의 싹이 피어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그 아버지의 믿음의 부족과 제자들의 믿음의 부족을 탓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믿음의 부족을 탓하신 후에 더러운 영을 꾸짖어 아이를 고쳐주십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몹시 놀랍니다.
세 명의 제자는 산에서 이미 하느님의 영광을 목격했습니다. 이는 세사람 만의 체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이러한 일이 있었슴에도 그들의 놀라움이 믿음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하게 하지만 믿음이 없으면 자기의 고정관념 밖의 것에대해서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믿음을 갖고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모든 것이 원하는대로 잘 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우리의 믿음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처하게 되면 하느님을 원망하고 불평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느님은 없다고 극단적으로 반응하기도 합니다. 모든 탓을 하느님과 남에게로 돌립니다. 하지만 참 믿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먼저 ‘하느님께서는 왜 나에게 이러한 상황을 허락하실까?’하고 질문을 해 봅니다. 자신을 들여댜 봅니다.
엄마가 자식들을 야단 칠 때 자식들은 반발합니다. 엄마가 나를 싫어하나 보다 하고 생각을 합니다. 엄마가 자신을 왜 야단 치는가에 대한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숙한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야단을 치는 엄마의 아픈 마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신에게서 이유를 찾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참 믿음을 소유한 신앙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나의 어려움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아파하시는 그 마음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십자가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해 줍니다. 믿음은 광야를 거치지 않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난 땅으로 가는 것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잘 듣는 사람입니다. 내가 듣고 싶어하는 것만 듣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인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코헬렛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이런 시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네가 말할 때가 오기 전에.”(코헬렛 12, 1)
오늘은 도미미코 사제 축일입니다. 성인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성인의 성덕이 여러분 모두의 삶의 자양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하루도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