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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12 03:20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삶 (루카 6, 41-42) -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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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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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62

2014년 9월 12일 금요일 

19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2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코린 전 9,19-22)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루카 6, 41-42)

아침 일찍 눈을 뜹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안에서 행복한 하루,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희망이란 불확실함 속에서 확신을 찾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이 불확실해도 언제나 확실함이 있기에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도 함께 하심을 확신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깨어 있는 모든 순간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행복은 당연함 속에서 감사함을 찾는 것입니다. 주어져 있다고 해서 주어진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주어짐의 이면에는 그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신 분이 하느님이시고 주어진 우리의 삶의 참 주인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깨닫는 이 순간 얼마나 감사하고 힘이 되는 지 모릅니다. 

오늘 복음 전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 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루카 6, 37)하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심판하지 마라, 단죄하지 마라, 용서하여라.’하는 이 세가지의 명령은 사실상 같은의미로 사용됩니다. 이 세 명령하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살펴보면, .심판이란 다른 사람을 죄인이라고 판단하는 것을 말하며, 단죄는 죄인이라고 하여 처벌하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란 상대방의 죄를 덮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 말은 사실은 사랑의 실천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은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지만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매이는 사람이 된 바오로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는 이러한 매임을 스스로 사도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자유의지로 자신의 뜻을 포기함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복음 때문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 안에서 깨달은 자신의 삶의 철학입니다. 이러한 철학을 삶을 실천하는 바오로의 삶이 바로 오늘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깨닫게 합니다. 

사랑은 자유로운 자신을 스스로 매이게 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당연함을 당연하게 생각히지 않습니다. 주어진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분의 뜻을 찾습니다. 주어진 의미를 찾습니다. 바로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내가 향유하고 살아가는 모든 것에서 이 모든 것이 주어진 의미를, 당연함 속에서 감사함을 찾을때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있는 티는 잘 보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어떻게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줄 수가 있겠습니까. 자신은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이웃에게 사랑을 가르치겠습니까?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위선자’란 바로 이러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는 삶은 바로 나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특히 사목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잊어서는 안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의 눈의 들보를 찾는 일이 바로 이웃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전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눈에서 들보를 빼는 그 순간에 이웃에게서 티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시편 103장의 말씀은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 줍니다.

8 주님께서는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신다. 9 끝까지 따지지 않으시고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며 10 우리의 죄대로 우리를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우리에게 갚지 않으신다. 11 오히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그분의 자애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에 굳세다. 12 해 뜨는 데가 해 지는 데서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우리에게서 멀리하신다.13 아버지가 자식들을 가엾이 여기듯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시니(시편 103, 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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