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59
2014년 9월 9일 화요일
1 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 어찌 성도들에게 가지 않고 이교도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2 여러분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여러분은 아주 사소한 송사도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까?(코린전 6, 1-2)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루카 6, 12-13)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산에서 밤새워 기도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지난 날을 되돌아 봅니다. 참으로 기도에 인색했던 저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세상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기에 기도는 삶의 우선 순위에서 가장 뒤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어릴 때 부모님의 일방적인 기도에 대한 강요가 기도에 대한 거부감으로 은연 중에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순수했던 그 기도와 신앙에 대한 강조가 지금의 저를 있게 하는데 참으로 중요한 작용했슴을 저는 압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세상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서 방황할 때 당신께서는 얼마나 이 불쌍한 영혼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계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인내와 사랑으로 저를 바라보시면서 한 눈을 감아 주셨던 주님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당신의 인내심에 감사하기에 주변에서 저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더 인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자 노력합니다.
기도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표현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사입니다. 기도하면 답이 있습니다. 고민거리를 갖고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지혜를 주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기도는 감사하게 합니다. 나의 부족함을 덮어 주시고 채워주시는 주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남의 들보를 보기 전에 자신의 들보를 보게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이기에 감사할 줄을 아는 것입니다. 기도는 남을 용서하게 합니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눈을 갖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분별하게 합니다. 무엇이 하느님의 것이고 무엇이 세상적인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봄이 기도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모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대화를 하십니다. 당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 아버지를 찾으셨던 분이십니다. 그분의 평소의 삶이 눈앞에 그대로 보여집니다. 기도는 아버지와 일치하는 시간임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열 두 사도를 뽑으시기 전에 밤새워 기도하셨습니다. 당신의 생각보다는 아버지의 생각을 알기를 원하셨슴을 압니다.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기에 합당한 인물의 기준이 어떤가를 찾으셨을 것입니다. 나의 기준이 아닌 아버지의 기준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적인 삶의 능력이나 똑똑함을 고려하지 않으시고 세상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참으로 부족한 사람들을 당신의 사도로 부르십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가 포함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왜 유다 이스카리웃을 뽑으셨을까 하는 질문을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힝일 것입니다.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뽑으셨다면 당신의 권능에 대한 심각한 의심을 갖게 됨을 아시면서도 뽑으셨다면 배반의 책임은 유다에게 있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능력으로는 명확한 답을 찿을 수 없지만 이 결정이 바로 아버지와의 대화 안에서 이루어진 결정이기에 우리 역시 기도로서 해결해야 하는 의문인 것입니다.
세상적인 눈으로가 아닌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생각할 때 답이 있습니다. 이성으로 오는 답이 아닌 마응으로 오는 답입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닌 하나가 될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닌 하나가 아닌 제로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닫혀진 질문에 열려진 답이 하느님의 답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나의 일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아닌 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찾기 보다는 아래로 부터 오는 지혜를 중시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 어찌 성도들에게 가지 않고 이교도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말씀이 가슴을 찌릅니다. 바로 저 자신이 그러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