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56
2014년 9월 5일 금요일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코린전 4,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루카 5, 31)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루카 5, 38)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에게 너가 죄인이고 환자임을 인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이 아무리 옳다고 하여도 결국은 무한한 존재 앞에서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리 내가 크다고 하여도 무한 앞에 유한인 것입니다. 무한 앞에선 유한은 ‘무한 나누기 유한은 제로다.’라는 법칙이 적용됨을 압니다. 그러한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적용할 때는 그 답을 잊어 버립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니가 고집을 버리고 스스로 환자임을 인정하고 치료받기를 원한다면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니가 스스로 환자가 아니라고 고집을 부린다면 치료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스스로 구원 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스스로 구원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스스로가 구원 받아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구원의 전제라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구원을 받기를 원한다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루카 5, 38)고 말씀하십니다. 새 포도주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새로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틀 안에서 안주할려고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만든 틀 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틀이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낡고 헐어서 새포도주의 왕성한 발효의 힘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의 사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질은 없고 겉만 번지르한 삶에서 빨리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결여된 판단의 도구가 되어버린 율법이 아닌 이제는 포용과 겸손과 나눔의 삶을 살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정신을 받아들이기에는 자신이 만든 틀이 너무나 견고하기 때문에 이 견고한 틀을 깨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바룩 예언자의 “너희 마음이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였으나 이제는 돌아서서 열 배로 열심히 그분을 찾아야 한다.”(바룩 4:28}는 그 말씀이 메아리 쳐 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참 지혜의 말씀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하느님을 떠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 빠져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세상에서 한 걸음 벗어나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에 빠져서 허둥대며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지금이 그 순간입니다. 악의 유혹에 빠지기는 쉬운데 그 악의 유혹에 빠진 내가 벗어나기는 열배의 노력이 필요하답니다. 하지만 그러한 유혹에서의 빠져나옴은 내가 노력하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유혹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그러한 약속을 하심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의도가 있었슴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서는 나의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나에게 기대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