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54
2014년 9월 3일 수요일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 여러분을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1코린 3, 3)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마태 4, 43)
오늘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미국의 소도시인 ‘오마하’가 속해있는 네브라스카 주는 옥수수 농사와 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피정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어스틴으로 돌아갑니다. 개인의 능력으로는 이렇게 큰 변화를 이끌 수 없기에 주님의 권능에 찬미와 영광을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아름다운 피정 집의 환경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 오늘의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마태 4, 43)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자렛의 회당에서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장엄하게 선포하신 뒤에 당신의 사명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십니다. 하지만 당신의 고향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쫓아 냅니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함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으로 가십니다. 그곳에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몹시 놀랍니다.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귀와 더러운 영까지 예수님께 굴복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내 쫓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병든 장모를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당신께 오는 많은 병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루카는 병과 마귀를 일치시킵니다. 따라서 병은 바로 마귀의 작용임을 보여줍니다. 병의 고침은 바로 마귀가 나감으로서 이루어짐을 말합니다. 따라서 많은 환자들이 병의 고침을 받는 순간에 마귀도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루카 4, 41) 하고 말하면서 떠납니다.
피정 중에 안수를 하면서 참가하신 분들의 체험담을 들어 봅니다. 에수님을 다양하게 체험합니다. 육체적인 아픔과 내적인 아픔을 치유 받았다는 사람들도 있고 성령과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체험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체험들이 이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하느님의 사랑의 표현임을 잘 압니다. 이제는 하느님의 사랑이 이들을 통해서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퍼져나갔으면 합니다.
스스로는 성경을 많이 읽고 잘 안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그들의 내적인 교만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가끔 이런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잘 안다는 분들이 이를 지식으로로만 받아들이면서 판단은 하지만 자신의 삶은 변화지 않습니다. 말씀이 이웃과 자신을 구별하고 반단하는 도구로 사용함을 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피정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모든 분들이 이 사랑을 가슴 깊이 오래 간직하면선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해주는 삶을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