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 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마태 8, 29)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도착한 '호수 건너편'은 '가다라인들의 지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방이 어디인지 확실하게는 모릅니다. 주석 성경에 의하면 ‘가다라인들의’ 대신에 ‘게르사인들의 ‘로 또 다른 수사본들에는 ‘게라사인들의 ‘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가다라는 갈릴레아 호수 남동쪽 10킬로미터 지점, 네카폴리스 지방에 자리잡은 그리스식 고을이었다는 설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습니다. 이지방에서 마귀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예수님께 마주왔다고 합니다. 당시의 무덤은 자연동굴이나 바위를 파서 무덤을 만들었답니다. 따라서 피신처로도 이용될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쨌던 이 무덤은 부정한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여기서 마귀들린 사람 둘이라고 마태오 복음은 전하지만 마르코 복음 5장 2절과 루카 복음 8장 27절에는 마귀들린 사람 한사람으로 되어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너무 사나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쩌면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이들을 쫓아내어 마을에서 떨어진 무덤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서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 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마태 8, 29) 하고 외칩니다. 여기서 마귀들린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4장 3절에서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분명하게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악마는 벌서 알고 있었슴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표현은 에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아니라 자신들이 생존하기 위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과 예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까 자신들의 삶에 간섭을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덧붙여서 아직까지 자신들이 쫓겨날 때가 되지 않았는데 벌써 저희들을 쫓아낼려고 하십니까” 하고 말합니다. 악마의 본성은 거짓말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사람들을 떨어지게 하는 존재입니다. 이들의 이러한 시도는 창세기 때의 아담과 하와때부터 계속되어 왔습니다. 마귀는 자신들이 머물렀던 곳을 찾아갑니다. 우리가 깨끗하게 청소를 해 놓았어도 이 공간을 성령으로 채우지 못하면 마귀는 무리를 지어서 다시 찾아옵니다. 마귀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예수님께 그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돼지 떼가 있는 그곳으로 보내 달라고 청합니다. 왜 이들이 돼지 떼 속으로 보내달라고 했을까요? 교묘한 마귀의 전략입니다. 위기의 순간을 넘기기 위한 작전입니다. 돼지는 부정한 동물이기에 어쩌면 자신들 역시 부정한 존재임의 표현이기도 할 것입니다. 마귀들은 마귀들린 사람으로부터 나와서 돼지 떼속으로 갑니다. 돼지들은 마귀들이 들어오자 공포에 사로잡혀서 호수를 향해서 달려가 물 속에 빠져 죽어버립니다. 돼지들이 왜 집단적으로 물 속으로 뛰어들어갔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마귀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했고 마귀들린 돼지들이 악령이 거주하는 물 속으로 뛰어들어 간것은 이러한 연장선 상에서 의미를 파악할 수도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일을 체험한 그 마을의 주민들은 예수님께 마을을 떠나가 달라고 청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었던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기 보다는 물질에 더욱 관심을 둡니다. 현상적으로 일어난 일에 이해득실을 따집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신앙인들에게 영광인 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의 원인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떠나게 합니다. 하루 하루를 불안과 두려움 쌓여 살아갑니까? 아모스 예언자는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 드리는 참된 제물이 되게 하십시오. 이 삶은 바로 악이 아니라 선을 찾는 삶입니다.’ 하고 예언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 삶의 결과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에 마귀들이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질 것입니다. 감사가 넘쳐나고 기쁨이 넘치는 하루 하루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깊이 체험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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