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05
2014년 6월 18일 수요일
하느님 만을 바라보는 삶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마태 6, 1-2)
살아가면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름 자신이 있고 떳떳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러한 삶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은 더욱더 남의 눈과 귀를 피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다니는 전화기에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어서 언제 어느 순간에 나의 모습이 나도 모르게 촬영되어서 공개될 수도 있습니다. 사생활 침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것입니다.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합니다.
고국의 문제에 가능하면 관심을 두지 않을려고 하는데도 역시 그 방향으로 눈과 귀가 향함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총리임명을 앞두고 여러명의 총리 후보자들이 자신들의 과거의 삶 때문에 청문회에 서 보지도 못하고 중도하차를 하기도 하고 청문회를 통과하지도 못하는 경우들이 생겨납니다. 지금의 총리 후보자도 자신의 과거 발언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슴을 봅니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사전검증을 한다니까 지명하기 전에 후보자가 될 사람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삶의 흔적들을 점검해 보았슴은 당연한 일일텐데 이렇게 후보자가 되고 난 이후에 다시 여러가지의 문제들이 드러나는 것을 보고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함에 대한 솔직한 인정이나 사과 보다는 변명에 급급하는 모습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에 인간을 의식하지 않고 하느님을 의식하고 하느님께 보이기 위한 삶을 살아왔다면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고백과 반성을 통해서 청문회가 신상털이가 아닌 칭찬과 격려와 건전한 충고의 과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의 일일때는 누구나 쉽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본인은 정말 떳떳하게 살아왔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남에게 겨누는 화살은 겨누기가 쉬운데 나에게로 겨누면 나 자신도 그 화살을 피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눈과 귀는 속일 수가 있어도 하느님을 속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인간의 어리석음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나의 모습을 그려보아야 합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외면으로 내면을 속이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든지 부끄럽습니다. 모든 것이 다 드러나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부끄러운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백이며 반성입니다. 회개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는 일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의롭기 위해서 실천하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 보이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간들로부터 존경을 받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느님으로부터 상을 받기 위한 행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