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92
2014년 6월 13일 수요일
22절 그런데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23절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에서마다 일러 주셨습니다.(사도 20, 22-23)
‘성령에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오로의 모습을 봅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면서 갑니다. 다만 그가 아는 것을 그곳에 환난과 투옥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 가는 바오로의 무모한 용기는 어디에서 나올까 생각합니다. 조금만 귀찮고 힘들게 보이면 어떻게 이를 피해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저에게는 참으로 사도의 용기가 부럽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러한 열정은 확고한 믿음에서 온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의 순교자들이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용기 역시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순교자란 어떤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에도 가장 평범한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하나같이 순교의 삶을 갈 수 있었던 이면에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기적 보여주시면 확고한 믿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텐데 하십니다. 그럴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 소수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들은 가장 큰 기적을 체험하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홍해 바다를 건너면서 체험했던 그 기적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하느님을 의심하고 불평과 불만을 쏟아냅니다. 이들은 결국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이들이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들의 마음이 완고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바오로는 완고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지만 그 완고한 마음에 예수님을 받아들이면서 믿음의 삶을 살아갑니다. 회심한 이후로 바오로는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불평이나 불만도 없이 이러한 시련을 다 견디어 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아갑니다.
믿음의 삶은 언제나 하느님께서 함께하시지만 완고한 마음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하느님을 몰아냅니다.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예수님께서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가르치시고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시고 삼 일만에 부활하신 사랑의 삶이 참으로 대단한 일이지만 동시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기도가 전혀 필요가 없는 분이 기도하신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아버지와 하나되는 통로가 기도입니다. 우리와 예수님과 하나되는 통로도 기도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을 봅니다. 이 장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장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에서 5절까지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6절에서 19절까지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20절에서 26절까지는 선교를 통해서 앞으로 하느님을 믿게 될 많은 사람들, 곧 믿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서 바치신 기도는 당신께서 지셔야 하는 고통의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많은 유혹과 시험에서 벗어나 가던 길을 계속 가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께로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갈려고 하면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수 많은 유혹과 시련과 이유들이 찾아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이러한 유혹에 빠지고 시련에 좌절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모든 시험과 유혹을 물리치시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시면서 고난의 길을 가십니다. 그 길을 가시면서 항상 아버지 하느님과 기도로서 함께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와 순명의 삶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의 삶을 살아가시면서 언제나 자신이 중심이 아닌 아버지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께로 모든 관심을 모으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간다고 말하면서도 필요에 따라서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양면성을 갖고서 하느님의 일을 하기에 갈등을 겪게 되고 유혹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는 것은 옛사람인 자아가 죽고 새로 태어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하겠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갈라티아서 2장 20에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고 고백하는 삶이 바로 우리의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