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89
2014년 5월 30일 금요일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루카 1, 38)
오늘 본당에서는 성모의 밤 행사를 갖습니다. 저희 본당은 매년 오월 마지막주 금요일 밤에 성모의 밤행사를 갖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주에 행사를 갖는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성모님의 달 오월을 보내면서 우리는 이 한달을 어떻게 성모님을 사랑하고 성모님의 삶을 우리의 일상에서 구현하고 살았는지를 반성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성당에서 많은 행사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사를 하면서 아쉬움이 남는 것은 행사가 행사로 끝난다는 사실입니다. 행사에 담겨진 의미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고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성모님 상을 가정이나 레지오 회합실이나 성당안에 모시고 있고 십자가 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는 차에 걸어놓기도 하고 목에 걸고 다니기까지 합니다. 왜 우리가 성모상과 십자가를 이렇게 소중하게 간직할까요? 그냥 장식용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나중에는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성모님 상을 통해서 성모님을 더 잘 보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의미를 잘 새기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좀더 예수님과 성모님께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가 없다면 개신교신자들이 우리가 우상을 숭배한다고 공격을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시간이 너무도 빨리 간다는 생각을 여전히 갖게 됩니다. 성모의 밤을 엊그제 지냈던 것 같은데 벌써 일년이 지났습니다.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5월에 우리는 성모님을 그려봅니다.
성모님은 우리 모두의 삶의 전형이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 어머니들의 전형이십니다. 성모님의 구체적인 삶에 대해서는 성서에 그렇게 많이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 복음서가 보도하고 있는 그분에 대한 단편들을 종합하여 성모님께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셨는 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참으로 당신의 뜻보다는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게 살아가셨던 분이심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잉태를 예고하는 보도(루가 1장 27-37)를 통해서 당신의 앞으로 전 삶은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것임을 알려 줍니다.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당신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빕니다.”라는 말씀만큼 더욱 확실한 답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의 아들의 삶을 통해서 받게 되는 모든 인간적인 설움과 아픔들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는 삶을 살아가십니다. 아들이 그에게 주어진 그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드러나지 않는 겸손의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비움과 겸손’은 성모님을 묘사할 수 있는 가장 어울리는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예수님 역시 자신의 뜻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살아가신 분이심을 전 복음서를 통해서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그분의 삶을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6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2장 6-8).
성모님과 예수님과의 관계의 중심에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이들의 삶의 핵심은 바로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우리는 성모님을 그리면서 우리의 어머니들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들의 삶의 모습도 그려봅니다. 좋은 어머니의 전형을 성모님을 통해서 찾으며 자식됨의 전형을 예수님을 통해서 찾아봅니다.
성부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아들에게서 육적인 어머니의 뜻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성부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아들은 어머니로부터 육적인 모성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떨어지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 떨어짐의 중심에 하느님이 존재하십니다. 하느님 때문에 자신의 인간적인 모든 욕구를 포기하고 서로에게 멀어져 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을 하느님께서는 더욱 끈끈한 당신의 끈으로 묶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월은 바로 나 개인으로부터 출발하여 가정과 공동체를 돌아보는 달입니다. 어머님과 아버지와 아이들을 동시에 생각해 보는 달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 성모님의 달을 지내면서 우리는 성모님과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던 모자 간의 관계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세상적인 화려함을, 인간적인 욕심을 추구하지 않았던 그분들의 삶을 통해서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바로 한알의 밀알의 삶을 살겠다고 오늘 이 밤에 우리가 성모님 앞에서 새롭게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