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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5-28 03:36
   우리의 보호자로 오시는 성령 (요한 16, 13-14) -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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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2,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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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87
2014년 5월 28일 수요일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요한 16, 13-14)

예수님께서 이 땅을 떠나시기 전에 당신께서 우리에게 또 다른 보호자를 보내주십니다. 그 보호자는 ‘진리의 영’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영께서 어떠한 일을 하실 것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진리의 영과 당신과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니다. 여기서 '진리'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령이신 진리의 영께서도 예수님께서 자기 마음대로 말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말한 것처럼(12,49-50) 아버지에게서(또는 예수님에게서) 들은 것만을 이야기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이제 곧 겪게 될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 등에 대해서 알려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활동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더욱 영광스럽게 되실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계시의 말씀을 예수님에게서 받아 제자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고 알려주심으로써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관계 속의 존재입니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독불장군처럼 자신은 타인의 도움을 전혀 받음이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꼼꼼히 되집어 보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는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고 있슴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 희망이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살아가면서 남의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하게 하셨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한 제물로 하느님의 아들이 받쳐졌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요한 복음 사가는 예수님을 ‘천주의 어린 양(요한 1, 29)’이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이 갖고 있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속죄양이  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에 대해서 종교적으로 믿는 사람들과 동시에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는다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것, 나아가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 놓을 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부모님들의 자식들을 향한 사랑에는 어떠한 조건이나 희생의 정도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들의 자식을 향한 사랑이 이러할진데 하물며 하느님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사랑은 더욱 크고 깊을 것임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이러한 분이 죄와 죽음의 나락에 빠져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 모두를 당신께로 초대하십니다. 하지만 그분의 초대에 응답하는 사람은 참으로 소수입니다. 사무엘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사무엘 상 3장)을 그려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 번씩이나 사무엘을 부르시지만 사무엘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아 듣지 못합니다. 급기야는 자신의 스승 엘리의 도움을 받아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말씀하십시오, 당신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사무엘 상 3, 10)하고 응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참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특별히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주고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인간은 조건적으로 응답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 주도록 ‘보호자’를 보내주시는데  인간의 교만은 보호자를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믿음의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자기나름대로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의 고백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말씀하십시오, 당신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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