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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24 09:32
   구원의 역사는 정 반 합의 신비한 일치(마태 1, 1- 25) - 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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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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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865

2016년 12월 24일 토요일

구원의 역사는 정 반 합의 신비한 일치(마태 1, 1- 25)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마태 1, 1)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합니다. 이번 성탄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생각입니다. 성탄을 축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준비하고 선물을 교환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성탄 축하인사를 나누면서 오늘 성탄이 바로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탄생이 가져온 결과를 생각하면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살아가시면 이 하느님의 사랑이 어떻게 실현되어 가는 가를 보여주십니다. 


성탄은 혼란을 질서 잡힘으로 이끌어갑니다. 하느님이 삶의 주인이었던 세상에 죄가 들어옴으로 인간은 이제 하느님의 자리에 자신을 둡니다. 완전한 존재가 가져다 준 완전한 세상에서 불완전한 존재가 주인이된 세상은 당연히 불완전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인 뒤 바뀐 세상에 존재하는 불안과 두려움과 무질서를 이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조상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예수님의 조상들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우대한 사람들이 아님이 눈에 들어옵니다. 당시에는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던 여자들이 넷이나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문가의 여인들이 아닌 문제의 여인들입니다.  인간의 일반적인 생각을 뛰어넘는 족보의 인물들을 보면서 하느님의 구원은 특정 부류의 인간에게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구원사에서 벗어나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2, 14)  하고 외칩니다. 예수님의 오심이 바로 하느님께는 영광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탄생이 하느님의 영광인 것은 바로 불안과 긴장이 넘치는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탄생은 이세상에서 약자로, 소외된 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은 하느님께는 영광이 되고 세상에는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평화는 하느님의 도움이 없이는, 하느님의 능력을 통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의 희망도 하느님께 근거를 두고 있어야 함을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손길이 미친 곳에 희망과 평화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철저한 자신의 비움에 나타남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해산 날이 되어 아이를 낳을 장소를 찾았지만 찾지 못하고 마굿간에서 태어나고 말의 먹이 통인 말구유에 뉘어진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참으로 마음이 짠해져옴을 느낍니다. 이 비움의 결정체가 이 땅에 평화와 희망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화려함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가장 비참하고 낮은 자의 모습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교만에서 시작되는 평화가 아니라 겸손함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소유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내어줌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임을 깨닫기 위해서도 하느님의 사랑이 비움과 낮아짐으로 드러난 것처럼 우리도 그러한 마음을 가질 때 성탄의 참의미를 깨닫을 수 있고 동시에 성탄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선물인가를 깨닫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바로 성탄을 축하는 참 의미인 것입니다.


성탄의 참의미를 깨달으면서 다시 한번 ‘성탄을 축하합니다.’ 하고 인사를 나누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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