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777
2016년 9월 13일 화요일
요한 크리소스투모 주교
축일에(루카 7,11-17)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 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 7,
13-14)
오늘은 우리에게는 금구
즉, 금의 입을 가진 분으로 알려진 성 요한 크리스스토모 주교님의 축일입니다. 성인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먼저, 굿뉴스에서 알려주는
성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보겠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 또는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아버지 세쿤두스(Secundus)와
어머니 안투사(Antusa) 사이에 태어났는데, 출생 연도는
정확히 알 수 없고 344-354년 사이로 추정된다. 아버지
세쿤두스는 어머니 안투사가 20세 되던 해에 사망했기 때문에, 요한은
젊은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세속적인 출세를 위해
이교도 수사학자인 리바니오로부터 수사학을 배웠으나, 이런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친구로 후에 타르수스(Tarsus)의 주교가 된 디오도루스(Diodurus)와 함께 성서
연구와 수덕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371년 안티오키아의 멜리티우스(Melitius) 주교는 그에게 독서직을 주고 자기 곁에서 일하게 하였다. 그러나
평소부터 수도생활을 갈망하던 그는 인근 광야에 가서 노(老) 은수자의
지도를 받으며 4년간 생활하였으며, 더 적극적인 수덕 생활을
열망하여 동굴에 들어가 2년간 고행과 성서 독서의 생활을 하였다. 지나친
고행으로 건강을 크게 해치자, 어머니 안투사의 눈물어린 간청 때문에 그는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그는 381년 멜리티우스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았으며, 386년에는 플라비아누스(Flavianus)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12년간 안티오키아의 설교 사제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명강론을 하였다. 그의
강론이 너무 유명해서 크리소스토무스(Chrisostomus), 즉 ‘금구(金口)’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390년부터는 신약성서에 관한 연속 강론을 실시하여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397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넥타리우스(Nectarius)가
사망하자 황제는 성 요한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임명하려 하였다. 그는 이를 거절하였지만 황제의
뜻이 워낙 완강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락하였다. 그래서 398년 2월 26일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테오필루스(Theophilus)로부터 주교품을 받았다. 수도의 총대주교가 된
그는 궁중생활과 너무나 밀착되어 부패한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화려한 생활을 질타하고, 신자들이 생활을
윤리적으로 쇄신할 것을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구호사업을 시작함으로써
교회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에페수스(Ephesus)에서
주교회의를 개최하여 성직매매를 한 6명의 주교를 면직시켰다.
그러자 총대주교의 개혁에
불만을 품고 있던 적대자들이 연대하여 요한을 반대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가장 극렬한 적대자는 그에게
주교품을 준 알렉산드리아의 테오필루스 총대주교였다. 한편 처음에는 황실과의 관계가 좋았으나 황후의 지나친
사치와 탐욕을 비난하여 악화되었다. 그는 403년 콘스탄티노플
근교인 퀘르치아(Quercia)에서 개최된 주교회의에서 적대자들의 근거 없는 모략으로 고발되어 면직되었으며, 소심증이 있던 아르카디우스(Arcadius) 황제는 이 결정을 받아들여
그를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로
유배시켰다.
그러나 신자들이 이 결정에
반발하여 폭동을 일으키자 이에 놀란 에우독시아(Eudoxia) 황후는 그의 유배를 취소하였다. 이 첫 번째 유배는 오래가지 않았으며, 성 요한은 군중의 환호를
받으면서 귀환하였다. 그 후 404년에 황제는 그를 다시
쿠쿠수스(Cucusus, 지금의 알바니아)로 유배를 보냈다. 그러나 그를 만나보려는 신자들의 순례행렬이 계속되자 황제는 다시 흑해 동편의 피티우스(Pityus)라는 험한 숲속으로 유배지를 옮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성
요한은 새로운 유배지로 가던 중 407년 9월 14일 코마나(Comana)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요한은 금구라는 별명에
걸맞게 수많은 명강론과 저서를 남겼다. 그의 강론에는 사도 바오로(Paulus)의
서한들이 많이 인용되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1세(Innocentius I)는 412년 그의 명예를 회복시켰으며, 그의 유해는 1626년 5월 1일 이후 로마(Roma)의 베드로 대성전 성가대 경당에 안치되어
있다. 1568년 교황 비오 5세(Pius V)는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면서 ‘동방의 네 명의 위대한
교회학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하였다.(굿뉴스에서 )
아침에 일어나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불쌍한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십니다.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면서 사회적인 약자로 살아가는 분들께 좀 더 따뜻한 마음을 갖고자 합니다.
오늘 이 복음의 앞부분에는
예수님께서 백인대장의 아들을 치유하는 장면이 나오고 이어서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오늘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전개를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병을 치유하실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까지도
살리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과부의 아들이 죽음을 이기고
살아남을 목격한 사람들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면서도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큰 예언자로 말하기도
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낫게 해
주시거나 기적을 행하실 때를 보면 대개 두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환자들이 예수님을 직접
찾아와서 치유해 달라고 청합니다. 이 경우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들의 병을 치유해 줍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의 경우는 다릅니다. 믿음으로 찾아와서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나 기적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당신께서 직접 측은한 마음(Matt. 14:14 = Mark 6:34
= Luke 9:11; Matt. 15:32 = Mark 8:2[1])을 가지시고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십니다.
당시의 과부는 참으로 의지할
데 없는 약자 중의 약자였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외아들에게 의지하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마지막 희망이었을 수도 있었던 외아들의 죽음은
이 과부에게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을 것입니다. 외아들의 시신이 든 관을 옮기면서 슬피 울고있는이 과부를 보고서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들었읍니다.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울지 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꼭 과부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이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상 삶이 너무 어렵고 이제 의지할 데 없어 절망 속에서 눈물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러자
죽었던 아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무슨 말을 하였는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이 젊은이에게 하신 ‘일어나라’라는 이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세상과 함께 세상 안에서 영적인 죽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털고 ‘일어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죽음으로
초대합니다. 이 세상과 함께 하는 삶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는 삶이라고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그 뱀이
또 다른 존재양식으로 우리를 죽음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죽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이제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에서 깨어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사탄과의 영적인 투쟁에 분연히 일어나서 죽음을 이기는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