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764
2016년 8월 30일 화요일
참 권위와 힘으로 쫓아내는 마귀 (루카 4,31-37)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루카 4, 36)
과학과 의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의 내면의 병은 더욱 깊어지고 확산되어 감을 느낍니다. 주변을 둘러봅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육적인 아픔보다는 정신적인 아픔을 갖고 살아갑니다. 관계중심의 문화에서 개인적인 문화로의 변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는 결과일 것입니다. 함께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나만 잘 살면된다는 이기적인 사고가 팽배해지고 있기때문입니다.
정신적인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느님 만이 이러한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참으로 치유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악을 대면하면서 우리가 이를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믿음 안에서 권위와 힘을 갖고서 주님의 이름으로 이를 쫓아내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저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권위와 힘을 가지고 마귀를 쫓아 내시는 분’ 이십니다.
‘권위’란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좋은 리더가 가져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그 권위는 위에서 부터 강제된 것이 아닌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아래로 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강의를 듣습니다. 그 강의를 들을 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은 없고 유명한 사람들의 이론을 인용을 하거나 늘리 알려진 예화를 사용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힘이 있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을 갖고서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고 말하는 것과 ‘누구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더라’ 하는 말의 차이일 것입니다. 권위는 자신의 ‘삶’을 말할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령의 힘을 지니고 있었읍니다(14).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학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생겨나는 힘입니다. 삶과 말씀이 함께하는 말씀이기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사랑이 함께하기에 생겨나는 힘입니다. 반면에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사랑을 말하면서도 대상이 중심이 되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이기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주는 사랑이 아닌 받는 사랑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그 시간에 마침 회당에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고 예수님께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구절을 보면, 악령이 예수님을 더 잘 알아 봅니다. 그가 예수님을 부를 때 그냥 예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고 예수님의 출신지를 넣어서 부릅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동시에 악령이 ‘저희’라고 하는 복수형을 사용하는 것은 바로 마귀의 수가 복수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서 다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들의 우두머리가 사탄입니다.
이어서 마귀가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기들이 하는 일과 예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까 간섭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라는 말은 비웃는 말입니다. 이 말은 자기들을 멸망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라고 말하고 이어서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고 덧붙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마귀가 예수님을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굳이 덧붙인 이유는 앞에서 그가 예수님을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리고 부를 때 나자렛 사람을 나지르인(거룩 한 사람)으로 해석하고 예수님을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주장 하기 위한 말입니다.
지금 마귀의 모습을 보면, 개들이 두려움을 느끼면 느낄 수록 더 큰 소리로 짓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거룩함’ 앞에서 더욱 발작하는 마귀의 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하고자 하면 이렇게 마귀는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이러한 마귀의 방해함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내가 하느님과 더욱 가까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 앞에서는 꼼짝을 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저항한 번 하지 못하고 떠나는 마귀의 모습을 예수님께서 ‘조용히 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라고 명령하시자 떠나는 마귀의 모습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귀는 그냥 떠나지는 않고 마귀에 들렸던 그 사람을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칩니다. 이것은 일종의 분풀이입니다. 하지만 그런한 분풀이가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마귀는 접근하지 못함을 압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마귀를 쫓아낼 힘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내가 어둠의 세력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에수님의 이름으로 이 어둠의 세력을 쫓아내면 됩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마귀는 접근하지 못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예수님과 함께하는 하루’를 지내고자 합니다. 시편 1편의 말씀처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고 오만한 이들과 자리에 않지 않으면,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를 하루를 살고자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