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754
2016년 8월 18일 목요일
하느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 (마태 22,1-14)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27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에제 36, 26 - 27)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 14)
우리는 약속을 너무 쉽게 하고 동시에 너무나도 쉽게 이를 깨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저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의 약속의 지엄함’을 깨달아라고 말씀하십니다.
판관기 11장 30-40절을 보면, 암몬 사람들과 싸우던 입타는 암몬 자손들을 자신의 손에 넘겨주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때 자신의 집에서 자신을 맞으러 제일 먼저 나오는 사람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약속입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암몬 자손들과의 전투에서 승리와 절대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입타는 자신이 한 약속 때문에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 자신을 환영하기 위해서 손북을 들고 춤을 추면서 맞으러 나왔던 자신의 외동 딸을 보면서 “입타는 제 옷을 찢으며 말하였다. “아, 내 딸아! 네가 나를 짓눌러 버리는구나. 바로 네가 나를 비탄에 빠뜨리다니! 내가 주님께 내 입으로 약속했는데, 그것을 돌이킬 수는 없단다.” 하고 괴로워 합니다. 하느님과의 약속을 되돌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어려움을 알게된 딸은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주님께 직접 약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아버지의 원수인 암몬 자손들에게 복수해 주셨으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하십시오.” 하고 아버지께 자신을 내어 놓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약속을 할 때 판관기에 나오는 입타의 이야기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서원을 하고 채우지 않는 것보다 서원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코헬렛 5,4)는 말씀과 “서원을 하기 전에 자신을 준비시켜 주님을 떠보는 인간처럼 되지 마라.”(집회 18,23)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시편 131편을 생각했습니다. 이 시편에서 다윗은 자신을 두고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자신의 마음은 오만하지 않고 자신의 눈은 높지 않고 자신은 거창한 것을 따라 나서지도 주제넘게 놀라운 것을 찾아 나서지도 않는다고 합니다(시편 131,1). 그러면서 자신은 어미 품에 안긴 젖뗀아기 같다(131, 2)고 말합니다.
깊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것은 어머니의 젖을 먹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이가 젖을 떼기 전에는 어머니를 찾을 때 젖 때문에 엄마의 품을 찾지만 젖을 뗀 아아가 엄마의 품을 찾는 것은 그 어머니의 품이 너무나 따뜻하고 품 안에서 참 평화와 행복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젖을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기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높이가 높지 않아야 합니다. 주제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교만은 아이가 어머니의 품을 떠나게 합니다. 어머니의 품안에서 느끼는 행복과 평화를 거부하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의 삶에서 떠나야 했던 것과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은 혼인잔치의 비유입니다. 우리에게 하늘나라에 초대를 받고서도 이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고서도 응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이들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젖을 떼지 못한 아이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하늘나라에 초대를 받고서도 응하지 않는 이유는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마태 22, 5-6)고까지 합니다. 심지어는 자신들을 초대하기 위해서 심부름을 온 사람들을 때려서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들이 이 초대에 응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일들을 하늘나라보다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눈이 높고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일과 세상적인 일이 겹치게될 때 우리는 너무나 쉽게 하느님의 일을 놓습니다. 세상적인 일의 포기는 지금 이 순간 눈에 보이는 결과를 보게하지만 하느님의 일의 포기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열고 눈을 뜨지 않으면 볼 수 없습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볼 수가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귀찮게 여기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신앙을 포기하거나 냉담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것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고 받아들일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새 마음과 새 영’을 받음으로서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하느님께서 우리의 하느님이 되십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안에서 참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하루가 될 수 있도록 다짐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