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745
2016년 8월 8일 월요일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에 (마태 17,22-27)
"사람의 아들 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 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 퍼하였다.”(마태 17, 22-23)
오늘은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굿뉴스에서 소개하는 성인에대한 글을 참고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펠릭스 데 구즈만(Felix de Guzman)과 아자(Aza)의 복녀 요안나(Joanna)의 아들인 성 도미니코(Dominicus)는 에스파냐 북부 부르고스(Burgos) 지방의 칼라루에가(Calaruega)에서 태어났고, 1184-1194년 사이에는 팔렌시아의 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아마도 학업을 계속하는 중에 그곳에서 서품된 듯하다. 그는 1199년에 오스마(Osma)에서 주교좌성당 참사회원으로 임명되었다. 또 그는 1203년에 오스마의 복자 디에고 데 아제베도(Diego de Azevedo, 2월 6일) 주교를 수행하여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Languedoc)로 가서 알비파 이단을 상대로 설교하였고, 시토회의 개혁을 도왔다. 1206년에 그는 알비파(Albigenses) 지역인 프루이유(Prouille)에서 여자 수도회를 설립하였고, 수많은 수도자들에게 강론하였다.
1208년 교황대사 베드로 카스텔란이 알비파에 의해 피살되었을 때,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는 그들을 상대할 십자군을 조직하고 그 대장으로 몽포르의 시몬 4세(Simon IV de Montfort) 백작을 임명하였다. 이때의 전투는 7년간이나 계속되었다. 성 도미니코는 이 군대를 따라다니며 이단자들에게 설교하였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1214년 시몬 4세가 그에게 카세네일의 성을 주었는데, 이때 그는 여섯 명의 동료들과 함께 알비파의 회개를 위하여 활동할 수도회를 세웠다. 그리고 이 수도회는 그 다음 해에 툴루즈(Toulouse)의 주교로부터 교회법적으로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1215년 제4차 라테라노(Laterano) 공의회에서 자신의 설교자회가 승인받는 데는 실패했지만, 다음 해에 교황 호노리우스 3세(Honorius III)로부터 승인을 받고 도미니코 수도회 일명 설교자회가 설립되었다.
그 후 성 도미니코는 수도회의 조직을 위해 여생을 보내면서 이탈리아, 에스파냐 그리고 프랑스 등지를 다니며 순회 설교를 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많은 회원이 새로 입회하면서 수도회도 정착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새로운 수도회는 지성적인 생활과 대중들의 요구를 잘 조화시켜 회개운동을 꾸준히 전개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220년에 볼로냐(Bologna)에서 수도회의 첫 번째 총회를 소집하였고, 그 이듬해 8월 6일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헝가리 순회 선교에서 얻은 병으로 인해 일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그는 1234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천문학자의 수호성인이다.(굿뉴스에서)
일상의 삶에서 인간은 누구나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기에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어리석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성전세의 납부와 관련하여 세금을 거두는 사람들의 입장을 배려하시면서 우리 역시 그러한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하십니다.
오늘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하느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죽고 하느님 안에서 사는 삶을 살도록 초대하십니다. 십자가는 바로 우리에게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당신께서 수난을 예고하시는 표현으로 ‘사람들 손에 넘겨진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윗은 자신이 죄를 짓고 난 뒤에 사람의 손에 넘겨져서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하느님의 손에 넘겨져 하느님의 자비에 의존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면서 “ 주님의 자비는 크시니, 사람 손에 당하는 것보다 주님 손에 당하는 것이 낫겠소.”(사무 하 24, 14)하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깨닫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용서와 자비가 없지만 하느님께는 자비와 용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적으로 이러한 표현 즉, ‘인간의 손에 넘겨진다.’는 표현은 이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벌을 받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따라서 이어지는 구절들과 함께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에 손에 넘겨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손에 의해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손은 죽이는 손이지만 하느님의 손은 살리는 손이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지해야 하는 능력은 바로 인간을 살리시는 하느님의 능력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참 지혜를 주시는 분이심을 깨닫습니다. 절망의 골짜기를 간다하여도 십자가는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보는 눈을 줍니다. 이 절망을 골짜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감사는 이러한 지혜와 희망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둘째 부분에서는 성전세의 납부와 관련된 토론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의 성전세는 로마 제국에 바치는 세금이 아니고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성전 유지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징수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금을 거두는 사람들이 와서 베드로에게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으면서 성전세를 내라고 독촉합니다. 이러한 독촉에 베드로는 즉시 ‘내십니다;’하고 답변을 합니다. 이 당시 베드로가 이렇게 즉각적으로 ‘내십니다’하고 답을 한 것은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세금을 내고 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 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이러한 질문을 하시는 예수님은 이러한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러한 확인을 통해서 당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주시고자 하십니다.
세상의 임금들이 자기 가족들에게서 세금을 징수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만 세금을 징수한다면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신 예수님에게서 세금을 징수하시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17,5) 성전보다 더 크신 분(12,6) 이기 때문에 성전 세를 바칠 의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닢을 발견할것이다.그것을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여기서 세금을 거두는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들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기에 이들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시지 않으실려는 배려의 뜻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어부인 제자들이 고기를 잡았을 때 고기의 입에서 발견한 스타테르 한 닢을 세금으로 바치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세금 납부의 필요성을 강조하시는 것 같이 보여집니다.
내가 아무리 옳은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이웃을 배려하는 것이 지금 당장 옳은 일을 실천하는 것보다 하느님 보시기에는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분별의 중심에 십자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우리가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분별의 기준이며 삶의 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의 옳음을 주장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는 하루를 다짐합니다. 십자가는 세상에서는 죽고 영원을 살게하는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이 깨달음이 삶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루를 다짐합니다. 그리고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다시 한번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