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718
2016년 7월 7일 목요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삶 (마태 10, 7-13)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 7-8).
어제는 가정선교회에서 주최하는 하루 피정에 강의를 하고 왔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신자 여러분들 앞에 선다는 것이 참으로 영광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피정에 오신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은 바로 조금 전까지 갖고 있었던 불안과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였습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이러한 조금한 체험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저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나의 삶을 통해서 하늘나라를 보여주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나를 통해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체험할 수가 있었으면 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특별히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면서 악인은 성공을 하고 출세의 가도를 가고 있슴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런 이유없이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억울한 삶도 전체의 우리의 삶을 두고 보면 그렇지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의 삶을 되돌아 봐도 그렇습니다. 전체 안에서 부분을 보게 되면 하느님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니까 그러한 순간들도 하느님의 은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예를 볼 수가 있습니다. 형들은 자신들이 요셉에게 한 행동 때문에 복수의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이때 요셉은 형들에게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창세 45,5) 하고 말을 합니다. 형들의 행동이 하느님의 구원의 큰 그림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 7-8) 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과 같이 주님의 기도는 7가지의 청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오게 해달라는 청원’ 입니다. 하늘나라가 오게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는 일하고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하늘나라는 우리에게 이미 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늘나라는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완성은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가시적인 표지가 바로 ‘앓는 이들을 고쳐주는 일이며,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는 일, 그리고 나병환자들을 깨끗하게 해주고 마귀를 쫓아내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슴을 선포하는 일’이 바로 복음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4, 17)도 그리고 세례자 요한도(3, 2)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슴을 이미 선포하셨고 여기서 다시 당신의 제자들에게 재차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동시에 당신의 사도들에게 이러한 능력을 행함에 있어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능력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인간은 예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도구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도구가 주인이 되고자 하는 행동을 보게 됩니다. 주인의 능력이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도구들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주인이 차지해야 하는 영광도 가르채는 도구들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남의 일이 아니고 나 자신에게도 일어나고 있슴을 보게 됩니다. 유혹입니다.
그리고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1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은 세상적인 방법이나 수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어떠한 수단도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다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여기서 ‘지팡이’는 여행을 하다가 맹수나 도둑이나 강도들을 만났을 때 호신용으로 사용했던 도구인데 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오로지 주님께 모든 것을 의지한다는 표현임과 동시에 ‘평화의 사도’로서의 모습을 가시적으로 보여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이미 우리에게 우리가 먼저 당신의 나라와 의로움을 구하면 그외의 것들을 곁들여서 받게 된다(마태 6, 33)고 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이러한 확고한 믿음을 갖는 것이 바로 사도의 조건인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느님께서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과 함께 시작된 나라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면 그것이 바로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종이 되는 삶을 살아가면 나는 자유하지만 세상이나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살면 결국에는 나와 세상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참 자유와 노예의 삶은 내가 어떠한 삶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러하기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세상의 어떠한 것도, 죽음도 명예도 권력도 자신을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미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사람이기에 어떠한 세상적인 것도 바오로 사도를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모든 것은 이제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웃이 나를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을 발견한 하는 삶을 살고자 다짐합니다. 매 순간 주님의 뜻에 순명하며 주님께 의탁하는 하루를 살고자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