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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1-04 17:51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요한 1, 35- 42) - 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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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2,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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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874

2017년 1월 4일 수요일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요한 1, 35- 42)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요한 1, 38)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실망합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말을 뒤엎기 때문입니다. 말과 행동이 가장 대조적인 대표적인 사람들이 정치인들 같이 보입니다. 국민을 행복하고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정치인들이 공동체의 선과 이익은 도외시 한채 자신 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입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보면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세례지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내어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합니다. 예수님의 길을 닦는 모습을 몸소 실천하심을 보여주십니다. 나보다 뒤에 오시는 분을 배려하는 모습입니다. 뒤에서 오시는 분께서  당신의 사명을 더욱 잘 실천하시도록  자신의 소중한 제자들을 에수님께로 파견하시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있다가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는 것을 눈여겨 보며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도 그 어린 양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합니다.  어린 양의 의미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첫째는 빠스카의 어린 양입니다. 이스라엘이 파라오의 압제에서 탈출하기 전날밤에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릅니다. 이러한 이 문설주에 바른 어린 양의 피로 이들은 이집트의 모든 맏배를 치시는 하느님의 벌로부터 자신들의 생명을 건지게 됩니다. 어린양은 사실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없는 양이 죽어 피를 흘렸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바로 예수님에게서 그 속죄양이 되는 어린양의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둘째는 이사야서(53,7) 에 나오는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에 나오는 어린양의 모습입니다. 그 양은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자기 백성을 위해 말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의 모습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그


리고 세례자 요한이 말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말 중에서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다.” 라는 말의 의미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없애다’(희랍어로 άirein)라는 동사는  ‘자기의 어깨로 나르다. 짊어지다’ ‘제거하다’ ‘없애다’ 등의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없앤다.’ 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죄’란 당시의 유대인의 죄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모든 사람이 짓는 ‘죄’를 말합니다. 우리는 이 단어 속에서 예수님의 보편 구원 사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당신의 첫 번째 제자들과의 대화하시는 그 내용이 우리에게는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 지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살펴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찾느냐?”하는 질문은 지금 우리에게 하시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 질문의 피상적인 의미는 “나에게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나?” 하는 것이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면, ‘너희가 인생을 살면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답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주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는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합니다. 하지만 이는 동문서답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질문에 담긴 의미는 이미 예수님에 대해서 스승인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들었기에 ‘선생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는 원의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질문을 하는 의도가 예수님께서 살고 계시는 곳의 삶의 편 불리를 따지기 위한 의도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무엇을 버리고 어떠한 십자가를 지고 다가가는 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세째는 안드레아는 가서 보고 와서, 자기 형 시몬에게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소”(요한 1,41)라고 말하며 그를 예수님께 데리고 갔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께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저에게 ‘너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하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바로  매 순간 당신을 발견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하고 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 10) 하고 대답하는 사무엘의 말이 바로 저의 응답이 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나는 더욱 작아지고 예수님이 더욱 크지시는 삶을 사는 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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