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851
2016년 12월 8일 목요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루카 1, 26-38)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면서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성모님의 삶의 모범과 주님의 영광이 여러분들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들을 때마다, 특히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제가 사제품을 받을 때를 기억합니다. 사제품을 준비하면서 이 구절을 평생 마음에 담고 살고자 선택했던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성모님의 사랑과 겸손과 순명의 삶을 새겨 봅니다. 사제로서의 삶이 바로 주님의 종으로서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강요에 의해서 주어진 종의 삶이 아니라 나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종의 삶입니다. 섬김의 삶입니다. 내가 주인이 아닌 하느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시고 나는 하느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나는 작아지고 하느님께서는 더욱 커지시야 하는 삶을 살아가는 삶이 바로 주님의 종으로서의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안도연 시인의 ‘어둠이 되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초롱 별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신은 그 초롱 별이 되는 그 사람이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서 어둠이 되어주겠다는 시입니다.
그대가 한밤 내
초롱초롱 별이 되고 싶다면
나는 밤새도록
눈도 막고 귀도 막고
그대의 등 뒤에서
어둠이 되어 주겠습니다.
빛이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서 더욱 짙은 어둠이 되어주는 내가 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둠이 되어주는 대표적인 두분이 바로 세례자 요한과 성모님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은 성모님께서 어떻게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성모님은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시는 지에 대해서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모님께 나타난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먼저 인사하기를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본문 28절) 했습니다. 마리아는 이 뜻하지 않았던 방문과 인사에 놀랍기도 하고 참으로 두려울 수 밖에 없엇을 것입니다(본문 29절).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곳에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천사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하는 말을 전합니다. 이어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하고 말합니다.
이 두 말은 사실상 같은 뜻의 말을 반복한 것입니다. 그 말들은 첫째로 그녀가 처녀이면서도 아이를 갖게 되는 것은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며 그래서 하나도 두려워할 필요 없이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그 일이 마리아에게는 크나큰 특권이며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낳을 아이는 다름 아닌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영원할 나라의 영원하신 왕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고 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곧 그녀에게 예고할 일 때문에 그녀를 미리 안심시키고 충격과 공포를 줄이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 예고란 다름 아니라 본문 31절에서 보는 대로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는 것입니다.
요셉과 약혼한 상태에서 아직 처녀였던 마리아로서는 벌써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너무나 놀랍고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신명기 22:23-24에서는 “ 23 어떤 젊은 처녀가 한 남자와 약혼을 하였는데, 성읍 안에서 다른 남자가 그 여자와 만나 동침하였을 경우, 24 너희는 두 사람을 다 그 성읍의 성문으로 끌어내어, 그들에게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 그 처녀는 성읍 안에 있으면서도 고함을 지르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남자는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는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치워 버려야 한다.”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처음 말을 붙이면서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했고 또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하고서도 곧 이어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고 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총애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낳을 아이에 관하여 천사 가브리엘은 “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 33) 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에게는 자신이 아이를 가질 것이라는 그 사실이 충격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듣고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고백합니다. 마리아가 자신을 하느님께 내어 놓음으로서 이 세상 구원은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 또한 성모님의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는 이 고백이 고백으로 끝나는 하루가 아닌 나의 삶을 통해서 실천되는 하루이기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