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0
백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이 천년의 근심을 지고 살아간다
루카 15, 1-3, 11-32
2014년 3월 22 일 토요일
18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19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미카 7, 18-19)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루카 15, 31)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늘 함께하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아가고 있기에 시간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의 시간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지금입니다. 과거의 시간들 한 순간도 내가 좌지우지 할 수 없습니다. 미래의 시간도 마찬가지 입니다. 미래의 어느 한 순간도 나의 뜻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래의 시간이나 과거의 시간에 대한 의미는 부여할 수 없습니다. 시간을 되돌리거나 앞당길 수는 없지만 그 시간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인간 만이 하느님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감사할 수 있으면 과거의 시간도 미래의 시간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미래의 시간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하느님께 믿음을 갖고 살아갈 수 있으면 과거의 아픔도 미래의 두려움도 지금 이 순간의 감사함에로 수렴시킬 수 있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의 체감 속도는 사람마다 연령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에 따라서 시간의 속도도 달라진다.” 고 합니다. 늘 주어져 있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나를 지배하기도 하도 내가 시간을 지배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은 시간의 주인에게 나를 내어놓을 때 가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의 순간 순간에 하느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슴을 압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는 그분을 우리가 떠나고 다가가기도 하면서 그분의 존재의 유무를 따집니다. 돌아가기만 하면 계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등을 돌리는 그 순간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손을 양쪽으로 넓게 벌리고 서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왜 예수님의 상을 만들 때 손을 벌리는 모습으로 만들었을까요? 돌아오는 우리를 환영하신다는 것입니다.
백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이 천년의 근심을 지고 살아간다는 말같이 지금 이 순간 감당하지 못하는 나의 근심을 주님께 내려놓는 믿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의 짐을 받기 위해서 손을 벌리고 계시는 그분께 우리의 전존재을 맡기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