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22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에제 18, 21-22)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 20)
하느님은 정의로우신가? 하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면 이러한 질문이 허투로 하는 질문이 아닌 우리의 삶과 너무나 직결된 질문임을 깨닫게 됩니다. 불의와 부정을 자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법을 잘 지키고 성실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더 잘 살고 있는 것을 목격하면서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에 대한 회의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의 죄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이러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불평과 원망이 담긴 질문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의 이성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따라서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의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듯이 우리 역시 하느님의 사랑의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체험이 필요합니다. 사랑만이 사랑을 알게 합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알기 위해서 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판단기준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만이 하느님의 공정과 정의를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악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 바로 나를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정의와 공정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의 ‘의로움’이 당시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해야 한답니다. ‘의로움’이란 바로 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리스도가 내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바로 ‘사랑’이 ‘의로움’입니다. 사랑은 나를 죽이고 이웃을 살리는 삶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윫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을 살리고 자신들을 드러내기 위해서 다른사람들을 판단하고 죽이고자 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우리의 의로움이 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해야 한다는 의미는 바로 나를 더 많이 죽이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나 자신이 드러나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함을 말합니다.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하느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유는 내 안에 사는 그리스도가 더 이상 내가 저질렀던 모든 죄악을 하느님께서 기억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랍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의 핵심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회개(나를 십자가에 못박는 삶은)의 삶을 살아가면 우리의 죄를 하느님께서 더이상 기억하시지 않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고 정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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