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첫날: 2005년2월 14일(월)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2년 전에도 이 시기에 사순절을 끼고 성모님과 이냐시오 성인의 성지를 다녀와서 순례기를 이 난을 통해서 연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글재주와 순례지에 대한 지식과 준비부족으로 그렇게 충실한 나눔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이번의 나눔도 크게 예년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족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기록을 남겨 놓고 나눔으로써 다음에 이러한 기회를 갖게 되실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순례를 함께 다녀오신 분들이 다시금 그 당시의 기억들을 되살려 보면서 남기고 온 흔적들이 아니라 지니고 온 성지의 흔적들의 참된의미를 되돌아보고 일상에서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단초가 된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다시금 13박 14일의 순례기간을 되돌아 보고자 합니다.
몇몇 사람들의 의기투합으로 몇달 만에 급조된 성지순례의 출발일이 드디어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본인과 안내자까지 포함하여 열 세명의 소수이기에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들었습니다. 2년전 성지순례를 떠날 때와 여러가지 상황이 나아진 것이 없는데 이러한 순례를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 또한 선택받은 사제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지난 연말부터 오늘까지 정신 없이 지내온 시간들인데도 그래도 성지순례를 출발할 수 있는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여건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일요일날 본당의 카펫을 교체하기 위해서 미사와 친교 후에 성당안의 의자와 여러가지 가구들을 옮기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예전과는 달리 친교를 함께 했던 거의 전 신자들이 함께 함으로써 신속하게 끝낼 수가 있었습니다. 본인이 순례로 자리를 비우고 있을 다음 주 토요일에 의자를 다시 성당으로 옮기는 작업에도 많은 신자들이 함께해 주시기를 죄송한 마음으로 기대해 봅니다.
엘 에이에서 있었던 피정 때문에 본당을 비운지가 얼마되지 않았는데 다시 성지순례를 핑계로 본당을 2주 비우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 참으로 용감하고 뻔뻔스러운 일이기도 했지만 이번 만은 하면서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참으로 죄송한 마음 그지 없습니다. 앞으로 2주 동안 본당에 아무런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회를 마치고 사제관으로 돌아오니 벌써 5시가 되었습니다. 순례를 떠날 어떤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 지금부터 짐을 꾸려야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나 하고 생각을 하면서도 멍청하게 천장만 쳐다볼 따름입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멍청하게 앉아 있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전화선을 통해서 들려오는 소리 “신부님! 짐은 다 꾸리셨습니까? 따로 이런 것 저런 것도 준비해야 한답니다. 잊지 마십시오. 그러면 내일 뵙겠습니다.”하고 끊었습니다. 그냥 시작하면 쉽게 끝낼 일을 이렇게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여행을 자주하는 본인은 여행짐을 사는데는 전문가여야 하는데 항상 이런 경우에는 가방을 내려놓고 멍청하게 바라보기만 합니다. 일찍 잠을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서 짐을 싸야지 하고 일찍 침대에 갔습니다. 새벽 4시 경에 일어났습니다. 먼저, 떠나기 전에 처리하고 가야 하는 것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 신문에 사제일기의 원고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쓰야 하나 고민하는데 갑자기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본당의 변화에 대해서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변화이기에 남에게는 본당의 자랑인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정리를 해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어제 미뤄 두었던 짐을 다시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성서와 필기도구와 세면도구, 그리고 옷가지, 제일 중요한 여권과 영주권 카드 등등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끝낼 수가 있었습니다. 샤워를 하고 동린이가 라이드를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사제관을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없는 사이에 자매님들이 사제관을 들릴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그냥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시간 맞추어서 동린이가 오고 짐을 옮겨싣고 함께 떠나실 자매님 집으로 향했습니다.
데레사 자매님 집에는 아네스가 우리가 먹을 김밥을 싸고 있었고 미소덩이 연형이는 혼자서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놀고 있었습니다. 데레사 자매님께서 챙겨 주시는 아침을 간단하게 먹었습니다. 괜히 아네스와 동린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이들과 함께 순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공항에 내려서 티켓팅을 하고 짐을 부치고 두 자매님께 전화를 해서 간단하게 사제관에서 처리해야 될 일들을 부탁하였습니다. 엘.에이의 엘리사벳 자매님께서 잘 다녀오라는 인사와 함께 해피 발렌타인 데이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여러모로 관심을 보여주시는 분들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에 행복함을 느낍니다. 아마도 사제이기에 가질 수 있는 행복감일 것입니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데 여러가지 생각들이 지나갑니다. 지금 한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오실 준비를 하시는 형제님의 일이 잘 되어서 가족들이 함께 살게 되기를, 5월에 있을 피정, 6월에 있을 결혼식 등등 참으로 여러가지 본당을 비워야 하는 일들이 영화의 필름처럼 그냥 지나쳐 가는데 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러는 동안 시간은 흘러 벌써 승객들이 비행기에 탑승하기 시작했습니다. 본인과 데레사 자매님도 이렇게 달라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달라스 공항에서 난생 처음으로 공항 안을 운행하는 전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데레사 자매님은 걸어서 가도 된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어쨌던 함께 걷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를 배터리차의 도움으로 츄리히행 비행기가 출발하는 게이트에 도착했습니다. 김밥으로 배를 채우는 동안 휴스턴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데레사 자매님이 도착했습니다. 배낭을 메고 머리를 뒤로 묶은 그 모습은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보였습니다. 나이에 비해서 젊어 보이고 또한 실제로 활동적이어서 여러가지 힘드는 일들을 잘 처리하는 자매님입니다. 이번 순례동안에도 순례단의 전례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자매님도 함께 김밥을 먹고 시간이 되어서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다행히도 승객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 두 데레사 자매님은 함께 앉으시고 저는 따로 3인용 의자에 편안하게 자리잡았습니다. 일차 집결지인 스위스 츄리히 공항까지는 9시간이 걸립니다.
2년 전에 파티마와 반느, 루르드 등의 성지를 향해서 떠나던 그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당시에는 리스본에 도착하던 때부터 치질로 고생을 했었는데 금년에는 어떠한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견디지 못할 정도의 어려움은 주시지 않으시는 분이시니까 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해봅니다.